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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유적 2

[부여박물관] 신라와의 전쟁과 익산경영, 왕궁리유적지 출토 유물

전북 익산시 왕궁리에는 국보 289호로 지정된 왕궁리 5층석탑을 중심으로 옛 절터가 남아 있다. 이 절터를 발굴 조사한 결과 사찰건물터와 함께 궁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건물터와 주변에 성벽터가 발견되어 이 곳이 백제 무왕이 미륵사 건립과 함께 백제 왕궁을 조성했다는 것을 추정하게 해 주고 있다. 왕궁리 절터에는 무왕이 조성한 왕궁지와 후대의 사찰 유적이 같이 남아 있는데 후대의 궁궐과 마찬가지로 앞쪽에는 정전을 중심으로 한 의례적인 공간이, 뒷쪽으로는 생활공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절터에서는 중앙정부가 있는 곳이란 의미의 '수부'명 기와가 발견되어 이 곳이 왕궁으로 조성한 곳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한 관북리유적지 등에서 출토된 당시의 행정관제를 나타내는 글씨가 찍힌 기와들이 왕궁리유적지에서..

지역박물관 2012.06.11

익산 왕궁리 유적지, 백제시대 왕궁터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는 장소는 백제시대 서동요로 잘 알려진 무왕이 조성한 왕궁지로 잘 알려져 있다. 무왕대에 왕궁으로 조성한 것을 의자왕대에 사찰로 변신했다가 고려 시대에 사찰이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의 오층석탑도 고려전기의 석탑이라 한다. 이 곳에서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과 정비작업이 계속 진행중이다. 왕궁리 유적지는 전면부에 궁궐 정전이, 뒷쪽에는 궁궐 후원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왕궁이 있었던 자리를 헐고 후대에 사찰을 조성한 까닭에 사찰 금당과 강당터는 궁궐의 주요 건물터에 조성되어 있고, 현재의 석탑 자리에는 원래 목탑이 있었다고 한다. 후원에는 기암괴석 등을 이용하여 정원을 조성했다고 하며, 남조와 교류가 많았던 백제의 특성상 남조 형태의 정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왕궁리..

절터 20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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