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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 5

훈민정음 창제 이후 조선시대 한글의 사용 (박물관 전시 고서적과 문서)

1. 이두,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표현한 문자 우리나라에 한자가 수용된 이후 우리말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두, 향가, 향찰, 속자, 구결 등 다양한 형태로 방법들이 만들어졌는데, 보통 이를 통털어서 이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으로 삼국시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고려때에는 이서라는 형태로 하급관리들이 공문서나 관용문에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통 이두는 넓은 의미로 한자를 차용해서 음을 표기한 것을 통칭하며, 현재의 일본어 또한 이두와 비슷한 개념의 문자라 할 수 있다. 이두는 신라초기부터 사용되어 진 것으로 보이며 서동요, 제망매가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이두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신문왕때 설총이 기존의 이두사용법을 정..

[서울역사박물관] 옛문서로 본 조선의 수도 한양

서울은 1394년 조선이 수도로 정한 이래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수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서울은 이름은 한성부로 실제로 그 영은 현재의 종로구와 중구를 포함한 영역보다 좁은 범위로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과 도성 바깥 일부를 관할하기도 했지만 원칙적으로 도성안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한성부는 정2품인 한성판윤이 최고 책임자 였으며 행정구역으로는 오부와 방, 계.동으로 구성되었으며 인군 10만명 내외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양 도성은 태조대에 처음 성곽을 쌓고 종묘와 사직, 궁궐 등을 짓기 시작하여 태종대에 궁궐과 관아, 가로와 시전, 그리고 수많은 주택들이 제각각 자리를 잡아 수도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양도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쳐면서 도시의 상당부분이 ..

지역박물관 2011.11.27

서울대 규장각, 역대 국왕의 어필과 한글 자료들

조선시대 규장각 설립의 원래 목적은 역대왕들의 글과 글씨를 모아서 보관하고 이를 책자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규장각에서도 조선시대 역대 왕들과 왕실인사 등의 글씨를 소장하고 있는데, 직접 쓴 글씨도 있고, 목판 등으로 간행된 경우도 있다. 현재 규장각에는 선조가 그린 난초그림과 숙종, 영조이 글씨가 전시되어 있는데, 교육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상당한 명필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영조의 글씨는 여러 드라마나 초상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던 불같은 성격을 잘 보여주는 힘있는 글씨체이다. 또한 규장각에서는 한글로 작성된 상당수의 고문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국왕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뜻을 일반백성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초기의 같은 문서와 후대 궁궐 여자들을 위해 작성했던 ..

지역박물관 2011.02.23

[중앙박물관 조선실] 세종대의 과학기술과 한글 창제

조선전기 세종대를 중심으로 조선은 천문학은 물론 수학, 도량형, 의약학, 농학, 화약과 무기제조 등 모든 과학 기술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였다. 그 중 가장 뛰어난 발전은 우리고유의 문자인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이다. 표의 문자인 한자를 대신한 표음문자를 사용할려는 의도는 신라시대 이두를 비롯하여, 일본어, 북방유목민의 문자인 거란어, 몽골어, 만주어 등 다양한 시대가 있었고 실생활에도 많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한글만이 거의 유일하게 민가생활에 깊게 뿌리내리어 오늘날까지 공식적인 문자로 자랑할만한 발자취를 남겨오고 있다. 중앙박물관 조선실에는 조선 전기의 과학업적을 대표할 만한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런 유물이 희귀하다보니 상당수는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태종때 만들어진 세계지도인 '혼일강..

중앙박물관 2010.12.17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우리의 글, 한글

조선초 세종대왕이 정인지 등의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이룬 한글 창제는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자, 현 실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어도 있고, 만주어,몽골어 등 많은 글자들이 주변국가에서 존재해왔지만 독창적이 표기 방법과 음운 체제를 가지고 있어서 한글의 의미는 아주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그 내용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것 이었기에 수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훈민정음(복제품), 해례본으로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학자들과 세종대왕의 서문있다. 원본은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세종 26년에 백성에게 반포한 책이다. 세종..

중앙박물관 201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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