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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릉 2

경주 괘릉 석상 및 석주 일괄 (보물 1427호), 후대 왕릉 조성의 모범이 되었던 사실적인 표현의 석상들

경주시 외동읍에 소재한 괘릉은 신라 38대 원성왕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는 왕릉으로 신라왕릉 중에서는 형식적인 면을 제일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받아들여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괘릉은 토함산자락이 들판과 만나는 낮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으며, 봉문은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둘레석으로 둘러져 있고 그 바깥쪽에는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만든 난간을 설치해 놓고 있다. 정면에는 서구의 신전 제단처럼 생긴 웅장한 상석이 놓여져 있다. 봉분에서 떨어진 입구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4마리의 사자상, 1쌍의 문.무인석과 석화표가 세워져 있다. 후대에 조성되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왕릉 구성에 있어서 모범이 되었던 왕릉이라 할 수 있다.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받아들이고 후대 왕릉조성의 모범이 ..

경주 괘릉 (사적 26호), 신라 왕릉 중 가장 완비된 형식을 갖춘 원성왕의 능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있는 괘릉은 신라 38대 원성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능이다. 원성왕은 혜공왕 16년에 상대등 김양상 (선덕왕)과 함께 김지정의 난을 평정한 후 그 공을 인정받아 선덕왕 즉위 후 상대등이 되었고 선덕왕이 죽자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786년에 당나라에 조공을 하고 유교정치를 지향하여 독서삼품과를 두어 인재를 등용하고 김제 벽골제를 증축 농사를 장려하였다. 선덕왕과 원성왕대에 귀족들이 요직을 장악하고 그 들 사이의 권력투쟁을 통해서 왕위를 계승하는 통일신라 후대의 정치 혼란상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한다. 사적 26호로 지정된 괘릉은 12지신상으로 둘레돌을 돌린 원형봉토분으로 봉토 주위에는 수십개의 기둥을 세우고 난간을 설치했으며, 중앙에는 안상이 조각된 서역풍의 상석이 놓여 있다. 봉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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