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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박물관 5

육군박물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대표적인 군사박물관

육군박물관은 서울 공릉동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박물관으로 1956년에 육사기념관으로 처음 개관했다가 1966년에 군사박물관으로 이름을 바뀌면서 군사전문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빅물관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군사관련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세총통(보물845호), 대완구(보물857호), 블랑기자포(보물861호), 조흡왕지(보물1126호), 부산진순절도(보물391호), 동래부순절도(보물392호) 등이 있다. 박물관은 조선시대 무기류들인 칼, 활, 노(弩), 각종 화포, 조선시대 군사관련 문서들과 임진왜란의 기록 등 조선시대 유물들과 한국전 관련 유물,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1985년에 개관한 현 박물관 건물은 우리나라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3층의 원형 건물로 약 ..

[육군박물관] 임진왜란의 기록, 부산진순절도(보물391호)와 동래부순절도(보물392호)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25년)부터 7여년간 왜군의 2차에 걸친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을 말하며, 중국을 중심으로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던 조선시대에 일어난 가장 큰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를 오다노부나가와 토요토미히데요시가 통일한 직후로 전국시대로 통해 많은 전투경험과 잉여병력, 힘이 넘치는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이 침략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사회전체적으로 기강이 해이해졌기때문에 실제로는 전쟁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충무공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수군은 조선초부터 오랜 기간동안 왜구의 침입을 제압하기 위한 기본 목표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이며, 훈련과 기강 또한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임진왜란 개전초..

지역박물관 2012.03.15

[육군박물관] 조선시대 무관 임명장인 조흡 왕지(보물1226호) 外, 군사지도와 병법서

무관(武官)은 조선시대 군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관원을 가리키는 말로 대체로 전쟁등 군사관련 일로 승진하거나 무반직에 제수된 사람, 과거시험인 무과 합격자로 관직에 진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서반(西班)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궁중에서 조회때 무신은 서쪽에, 문신에 동쪽에 줄을 서는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문관, 무관을 법제화하여 중추부가 정1품의 최고위직이며, 정2품 오위도총부와 오위, 조선후기의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등의 정1품 관직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고위직들은 대체로 문관들이 겸직하였기때문에 실제로는 무반으로 최고위직은 정3품이라고 한다. 반면에 지방 각도의 군영.진에는 외관직으로 병마절도사.수군방어사 등 다양한 형태의 관직이 있었으며, 군사상 중요한 지역의 고을 수령은 무신이 겸..

지역박물관 2012.03.14

[육군박물관] 조선시대 화약무기들, 세총통(보물845호), 대완구(보물857호), 블랑기자포(보물 861호)

조선시대 화약무기는 고려말 최무선이 처음으로 화약과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만드러 사용한데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화약과 화포가 전래된 것은 14세기 전반 이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실제로 화약을 제조한 것은 최무선이 왜구를 물리치는데 화약무기가 적절할 것으로 생각하여 오랜 노력끝에 중국 강남의 상인으로부터 흙에서 화약의 원료인 염초를 얻는 기술을 배움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377년(우왕3년) 화통도감이 설치되면서 화약을 이용한 다양한 총포와 화기, 전함 등을 개발하여 전라도 진포, 남해의 관음포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조선초 태종이 즉위하면서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화기가 개발되어 세종대에는 명나라의 모방에서 탈피한 독자적인 수준까지..

지역박물관 2012.03.11

[육군박물관] 조선시대 기본 무기인 칼(도검), 활(각궁), 노(弩)

조선시대 개인이 휴대한 기본 무기로는 칼과 활, 창 등을 들 수 있다. 한반도는 역사 이래로 북방유목민들이 침입에 대처해야 했기때문에 들판에서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산성에서 적을 방어하는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들판에서의 싸움도 대체로 세계적으로도 용맹스러웠던 몽골, 여진족을 상대해야 했기때문에 일반적인 개인무기인 칼이나 창보다는 먼거리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활을 주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내려와 유학을 공부하던 유생들까지도 평상시 활을 쏘면서 정신수양을 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은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복합활인 각궁은 세계적으로도 사거리나 명중율 측면에서 우수했으며, 유라시아 초원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복합활의 전통을 잘 계승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병사들이..

지역박물관 20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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