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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8

[서울성곽] 인왕산 정상에서 창의문(자하문)으로 연결되는 성벽

한양도성 중 인왕산 성곽은 돈의문(서대문)에서 시작하여 인왕산 능선을 따라서 창의문(자하문)까지 약 3 km 정도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최근에 복구되기는 했지만 성벽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구간 중 하나로 맑은 날 광화문 주변을 비롯하여 서울 도심에서 한양도성의 위용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인왕산 정상에서 자하문까지 이어지는 성벽은 경사는 능선을 따라서 석축을 쌓아 놓고 있으며, 북쪽 방향으로 기차바위라 불리는 능선이 탕춘대성이 시작하는 홍지문까지 자연적인 성벽을 이루고 있다. 인왕성 성벽은 청와대를 지키는 중요한 지역이기때문의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지금도 군부대들이 인왕산 성벽을 지키고 있다. 인왕산은 북악산, 낙산, 목멱산(남산)과 함께 한..

서울 석파정, 인왕산 자락에 자리잡은 흥선대원군 별장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 동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구한말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이다. 이 별장은 구한말 세도정치기 권력층이었던 안동김씨 일원으로 철종때 영의정까지 올랐던 김흥근이 세웠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은 집권한 뒤 반강제적으로 헌납받아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며, 고종도 이 곳에 가끔 머물렀기때문에 행궁의 역할도 했던 건물이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서 가장 가까운 경치좋은 숲과 계곡이 많았던 부암동에 자리잡은 이 별장은 주변에 인왕산, 북악산 등 바위산이 많아 대원군은 '삼계동 정자'라 불리웠던 것을 '석파(石坡)'라 이름집고 자신의 호도 '석파'로 바꾸었다. 석파정은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흥선대원군의 후손들이 소유하다가 한국전쟁 후 고아원.병원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사설미술관인..

고택_정원 2013.04.10

[서울성곽] 인왕산 정상 부근 성벽

한양 도성을 이루고 있는 성곽 중 경복궁 서북면에 둘러싸고 있는 인왕산 성곽이다. 북악산 성곽과 함께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 중 제일 중요한 곳으로 지금도 청와대를 방어하기 위해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인왕산은 정선의 산수화 '인왕제색도'에서 그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듯이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던 산이다. 인왕산은 높이 338m로 화강암으로 된 암반이 노출되어 있어 각양 각색의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들이 곳곳에 솟아 있어 북악산과 함께 서울의 명산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60년대 북한의 기습으로 인해서 한때는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지금은 등산로가 개방되어 있다. 인왕산 성곽은 서울의 서쪽인 사직단 부근에서 시작해서 인왕산 봉우리를 거쳐서 한양 도성의 북소문인..

[서울성곽] 사직터널에서 인왕산 범바위까지

인왕산은 서울을 둘러싸고 4개의 진산 중 서쪽편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으로 해발 338.2m로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산전체가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암반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기차바위,선바위, 범바위 등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바위들이 있다. 서울도심에서 백색의 화강암 바위산 경치가 아름다우며 그 풍경은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많은 그림에 볼 수 있다.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능선을 따라서 성곽을 쌓고 있는데, 서대문에서 사직터널과 인왕산 정상을 지나 북소문에 해당하는 창의문까지 성벽이 이어지고 있다. 인왕산 성곽은 사직터널 부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가가 없는 지역이라 현재 남아 있는 서울 성곽 중 그 모습이 제대로 남아 있는 편이다. 서울을 지키는데 있어서 주요..

서울 인왕산 국사당과 선바위, 서울에 남아 있는 전통신앙 관련 사당

국사당(國師堂)은 국수당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 뒷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동신을 모시는 마을 제당이다. 국사는 한자로 國師로 표기하는 하지만 한자에 담긴 뜻과 같지 않고 단순히 한자로 기록하기 위해 음을 취한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국사당이라는 말보다는 국수당, 국시봉, 국수봉 등 다양한 형태의 발음으로 나타난다. 국사당은 우리나라 중서부 해안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천신이 하강한 장소라는 의미의 천신사상과 관련되어 있으며, 산신당이나 서낭당 등 신당보다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 위상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남아 있는 전통신앙과 관련된 사당인 인왕산 국사당은 원래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선바위가 있던 인왕산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산에 국..

오늘날의 웃대, 인왕산 아래 조선시대 중인들의 거주지

조선시대 웃대는 인왕산 기슭 아래 조선시대 중앙 관서에서 일하던 하급관리들을 중심으로 중인계층을 형성했던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지역을 말하며 지금의 효자동 사거리에서 사직단 입구까지의 종로구 사직동.통인동.옥인동 등의 지을 말한다. 인왕선은 서울의 서쪽 백호에 해당하는 산으로 바위암봉을 중심으로 서울에서도 경치가 아주 좋은 지역으로 정선의 대표작 '인왕재색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많은 화가들이 이 곳 경치를 그림으로 남겨 놓고 있다. 조선후기에 그려진 도성대지도에 나타난 당시의 명소나 지명으로는 청운동 54번지 일대 청계천의 발원지이기도 한 청풍계, 옥류동천이 흐르던 옥인동,통인동 일대의 옥류동, 광해군때 세운 인경궁 누각이 있었던 누각동, 백사 이항복이 살았던 집터인 필운대 등이 있으며, 구한말 대표적인..

고택_정원 2011.09.26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웃대 사람들, 조선시대 중인들이 살았던 인왕산 아래 마을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한양의 중인들이 살았던 모습을 '웃대사람들'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했다. 웃대라 인왕산 기슭 아래 지금의 종로구 사직동.통인동.옥인등의 지역으로 경복궁 서쪽에서 인왕산 아래까지의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북한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경치가 좋은 곳으로 정선의 대표작 '인왕재색도'에 나타난 지역을 말하며, 실제로 겸재 정선은 이외에도 이지역 풍경이 담긴 작품을 여러점 남겨놓고 있다. 중인들이 살았던 웃대는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옥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지역의 실제 면적은 여의도의 절반정도로 조선시대 이지역에는 궁궐과 육조를 비롯한 관아와 가까웠기때문에 관아의 하급관리인 서리나, 궁궐의 신부름 등 잡일을 보던 별감 등이 주로 많이 살았다. 이 들 중인들은 조선후..

지역박물관 2011.09.18

[서울 성곽] 서대문에서 인왕산 아래 (사직동 부근)

서울의 성곽은 인왕산, 북악산, 남산, 낙산 등 서울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적인 장애물에 오랜 기간 동안 성곽을 쌓아 형성되어 있고 4대문과 4소문을 두고 있습니다. 서울의 서쪽 방면을 막고 있는 성곽은 서대문을 중심으로 인왕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숭례문과 서대문 사이의 성벽은 도심으로 변해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서대문에서 시작해서 능선을 따라 쌓은 성벽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 성곽 여행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사직단 근처 사직터널위 능선에 설치된 성벽을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인왕산 능선을 따라서 쌓은 서울 성곽을 탐사할 수 있습니다. 사직단과 독립문이 있는 무악재 사이의 능선을 따라 형성된 성벽 주위 마을 주민을 위한 도로에 잘려나간 성벽입니다.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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