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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10

[서울 고궁박물관] 정조와 규장각 신하들이 꽃놀이하면서 지은 시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궁중 미술 관련 유물 중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정조대왕이 당대의 핵심관료이자 학자들이 규장각 관헌들과 창덕궁 후원에서 꽃놀이를 하면서 지은 시들이다. 1792년 봄의 '내원상화임자갱재축'과 1793년 봄의 '내원상화계축갱재축'에서 약 40명 정도의 신하들과 술을 마시고 꽃구경을 하면서 시를 읊고, 글을 쓰면서 신하들과의 우의를 다지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규장각 관헌과 그들의 자제들인데, 정조대왕이 살갑게 규장각 학자들을 대했음을 알 수 있다. 참석한 사람들의 이력을 보면 정조 사후에 몰락한 사람도 있고, 무난히 살았던 사람도 있고, 다양한 인생경로를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글들을 보면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글을 짓는..

지역박물관 2010.11.27

화성 융건릉,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건릉

수원(화성) 화산 융건릉 중 서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건릉이다. 정조가 사도세자 능인 융릉을 국왕의 격에 맞게 조성한 후 그의 유언에 따라서 화산 동쪽에서 두번째 언덕에 조성했다가 효의왕후 사후에 현재의 위치로 이장했다고 한다. 사도세자에 대한 그의 효심을 잘 엿볼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는 왕릉 가까이는 갈 수 없게 되어있고, 아래에서만 올려다 볼 수 있다. 수원 화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정조대왕이 묻힌 건릉 정조대왕 건릉 입구에 홍살물이 보이고, 중앙에 정자각, 뒷편에 봉분이 있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건릉의 모습 정자각에서 내려다 본 건릉 입구 정조대왕 건릉 봉분 확대해서 본 건릉.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을 두른 차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융릉의 상설과 흡사..

화성 융건릉 왕릉 들어가는 숲속길과 입구 재실

화성 화산에 위치한 융건릉은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과 정조대왕이 묻힌 건릉을 통칭하여 융건릉이라 부른다. 현재는 행정구역상 화성에 속하지만 통칭은 수원 화산이라고 부르며, 근처에 있는 용주사와 더불어 왕릉 영역을 이루고 있다. 화산은 수원 남쪽의 넓은 벌판에 자리잡고 있으며 왕릉을 숲을 아주 정성스럽게 이백년 정도로 가꾸어 왔기때문 숲이 상당히 우거지고 아름답다. 융건릉 입구에서 건릉과 융릉을 한바퀴 돌고 나면, 숲의 기운을 듬뿍받고 나올 수 있다. 융건릉 입구에서 조금 걸어서 들어가면 동쪽 융릉방향과 서쪽 건릉방향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을 만난다. 길 양쪽으로 송림이 우거져 있다. 갈림길에서 서쪽편 건릉으로 들어가는 길. 중간에 숲은 송림에서 다른 활엽수로 바뀐다. 숲길을 걸어서 조금더 들어가면 정조대왕의 ..

화성 용주사, 정조대왕과 사도세자 융건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

화성 화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을 지키는 원찰로 사실상 정조대왕이 창건한 사찰이다. 여주 신륵사, 서울 강남의 봉은사와 함께 왕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이다. 원래부터 사찰이 있었던 자리인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사찰의 건물 대부분은 정조대에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재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찰의 가람배치도 일반 사찰과는 유교식 사당의 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출입문으로 왕릉이나 사당처럼 삼문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삼문에서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던 호성전까지는 박돌을 깔아 놓은 신도가 조성되어 있다. 당대의 화가인 김홍도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사찰의 건축에 관련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국보급 문화재인 용주사 범종이 이 곳에 있다. 특히 이 곳에서 부..

전국 사찰 2010.06.05

화성행궁,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에 설치한 대표적인 조선시대 별궁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건설한 신도시인 수원 화성의 서쪽편에 위치한 팔달산 정상 서장대 아래에서 동쪽인 창룡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행궁이다. 행궁은 왕이 한양 도성의 궁궐을 떠나 임시로 머무는 별궁으로 국가가 위급할 때나 각지에 흩어지 왕릉을 행차할 때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수원 화성의 행궁은 화성에 위치한 사도세자의 묘인 융릉을 방문할 때 잠시 머무를 목적으로 수원 화성과 함께 건설되었다. 수도인 한양 부근에는 여러 곳의 행궁이 있었지만, 그 규모면에서 화성행궁은 궁궐에 준하는 규모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화성행궁은 연회를 베풀던 누각인 낙남헌을 제외하고는 없어졌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여 옛모습을 다시 보여 주고 있다. 수원화성은 지방관직 중에 높은 직급인 종2품의 화성유수가 다스리던 지역으로 화..

조선 관아 2010.05.24

[화성 행궁] 정조대왕 어진을 모신 화령전 운한각

수원 화성행궁에서 정전격이 봉수당과 각종 연회나 행사가 열리던 화성행궁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물인 낙남헌을 지나면 오래된 큰 목조 건물을 중심으로 한 건물군을 볼 수 있다. 이 곳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건설한 정조대왕 어진을 모신 화령전으로 정조대왕의 아들인 순조가 세운 봉안각이다. 화령전은 정전인 운한각을 중심으로 재실인 풍화당,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비상시 어진을 옮겨놓은 이안청, 내삼문, 외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령전은 1800년대에 세운 건물이 온전히 남아 있는 곳으로 화령전 정전 내부에는 군복을 입고 있는 정조대왕의 어진이 있다. 조선후기에 세워진 대표적인 목조건물이라 한다. 화령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목조 건물로 앞에는 월대가 세워져 있는데, 궁궐 정전 건물과 비슷..

궁궐_종묘 2010.03.18

[수원 화성] 동장대, 연무대라 불리는 수원화성의 중심

수원화성 동장대는 동문인 창룡문과 북수문인 화홍문 사이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장대이다.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가 화성 안밖을 감시하면서, 적과 화성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의 움직임을 조망하면서 지휘하는 장소라면, 서장대는 이 곳 수원화성에 주둔하는 병사를 모아놓고 훈련을 하거나 군사적인 집회가 이루어진 곳이다. 실제로 정조대왕 재위시절에 이 곳에서 많은 행사가 있었으며, 군사들을 모아놓고 무예를 수련하게 했었다고 하며, 그래서 연무대란 별칭이 붙어 있다. 연무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동장대. 수원화성 동북방면 언덕에 세워진 동장대는 사방이 트여있어 성안을 살펴보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병사들이나 수원화성내 동태를 감시하는 역할보다는 병사들을 모아 놓고 훈련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

[수원 화성] 팔달산 정상 서장대, 팔달산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

수원화성 서쪽편에 위치한 팔달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이다. 연무대라 불리는 동장대와 함께 수원화성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는 지휘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특히, 이 곳 서장대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막힘이 없이 시원하게 뚫린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수원 화성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까지 사람들의 움직임을 잘 감시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서장대 편액은 정조대왕의 친필로 쓴 글씨이며, 직접 군사훈련을 지휘하기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수원화성 팔달산 정상부에 있는 서포루와 작은 암문인 서암문을 지나면, 수원화성에서도 제일 중요한 시절 중의 하나인 서장대를 볼 수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2층 누각으로 사방의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군사를 지휘하는 곳이다. '화성장대'라고 쓴 ..

화성 용주사 호성전, 사도세자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전각

호성전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전각으로 용주사 창건의 동기가 되는 건물이다. 지금 이 곳에는 사도세자, 혜경궁홍씨, 정조대왕, 효의왕후 김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일 여섯번의 재를 오렸다고 한다. 용주사 경내의 박석이 깔린 길, 삼문, 홍살문 등 궁궐식 예법이 들어간 건물들이 용주사에 있는 이유가 호성전에서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며, 당시 정조대왕이 이 곳 용주사로 여러번 행차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때 불타버린 것을 새로 중건하였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전각인 호성전. 그 앞에는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부모은증경탑이 있다. 호성전은 앞면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소박하고 검소해 보인다. 부모은중경탑. 취지는 좋으나 예술적인 면이 부..

[화성 용주사]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용주사 천보루를 들어서면 좌.우에 위치하고 있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들이다. 동쪽편 건물은 나유타료라 불리며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이고, 서쪽편 건물은 만수리실이라 하며 선당으로 용주사를 찾는 손님들이 기거하는 공간이다. 용주사에는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큰 법당은 많지 않으나, 서울과 가깝고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던 까닭에 많은 스님들이 머물고, 찾아 오는 손님이 많았던지 삼문 좌.우의 행랑채를 포함하여 상당히 많은 요사채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조대왕을 효를 중심으로 일반인들을 교육하는 효행교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용주사 경내 동쪽편에 위치한 요사채인 나유타로. 승당으로도 불리며 스님들이 기거하는 공간이다. 경내 서쪽편에 위치한 요사채인 만수리실. 용주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잠깐 머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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