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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15

파주 삼릉(사적205호), 한명회의 두딸인 장순왕후 공릉, 공혜왕후 순릉과 영조 장남 진종의 영릉이 모여 있는 곳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에 위치한 파주삼릉은 조선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의 무덤인 공릉, 성정의 원비인 공혜왕후의 순릉과 영조의 장남인 추존왕 진종(효장세자) 부부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조선초기 세조반정의 공신인 한명회가 세자빈으로 들였던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가 세자빈시절에 죽으면서 세자빈 무덤을 만들면서 조성되었으며, 한명회의 딸로 성종의 원비가 된 공혜왕후가 죽으면서 부근에 왕비의 무덤이 조성되었다. 세조와 함께 단종을 몰아내고 권세에 올랐던 한명회가 두딸이 세자빈과 왕비가 되었으나 이른나이에 죽자 직접 두딸을 위해 조성한 능역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다. 파주 삼릉은 다른 왕릉과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서오릉에 세조의 장자 덕종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영릉,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

파주 소령원(사적358호)과 수길원, 영조의 어머니 '동이' 주인공 숙빈 최씨와 후궁 정빈 이씨의 묘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있는 소령원은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이자 숙종대 장희빈, 인현왕후와 함께 TV사극과 역사소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중 한명인 영조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묘소이다. 고려중기 윤관장군 묘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소령원은 지금은 일반에 개방하지 않고 있는 곳으로 조선 왕족들의 무덤인 능원 중에서는 비교적 먼곳에 위치하고 있다. 숙빈최씨는 인현왕후 일가에 관계가 있었다고 하며 인현왕후를 모시는 무수리였는데 숙종의 눈에 띄어 숙원이 되고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후에 영조가 된 연잉군은 인현왕후가 복위된 후 낳은 2번째 아들이라고 한다. 영조는 효심이 지극했으며,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임을 숨기지 않았고, 어머니와 관련된 많은 일화들이 구한말 조선왕실들 사이에 전..

파주 삼릉(사적 205호) 영릉, 영조의 첫째 아들로 진종으로 추존된 효장세자의 능

파주 삼릉 중 제일 마지막으로 조성된 영릉은 조선 21대 영조의 장자이자 사도세자의 형인 추존왕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능이다. 효장세자는 영조가 즉위한지 4년되는 해인 1728년에 어린 나이로 죽었기때문에 처음에는 왕자의 묘로 조성되었다. 이후 영조 38년 사도세자가 죽은 후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였고, 정조가 즉위한 후 진종으로 추존되었으며, 대한제국 선포 이후인 1908년에는 다시 황제로 추존되었다. 이런 추존 내력은 영릉에 있는 3기의 표지석에 기록되어 있다.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존되면서 왕자의 묘에서 왕릉으로 격상되었지만 봉분과 석물은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난간석과 무인석이 없다. 영릉의 조성 경위와 절차, 부장품 등에 대한 기록은 의궤에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

여주 효종 영릉(사적195호),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한 조선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인 영릉이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에서 북동쪽으로 700여m 정도 떨어진 남한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왕릉이다. 효종의 능은 원리 구리 동구릉 건원릉 서쪽편에 있던 것을 현종대인 167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당시 석물에 틈이 있어 봉분안으로 비가 샐 염려가 있다는 여론이 있어서 능을 옮기기는 했는데, 실제로 별 문제가 없어 이에 연루된 인사들이 면직을 당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산릉의 조성과 천장 등에 관련하여 세력간 대립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왕릉은 왕과 왕비의 능이 상하로 조영되어 있는 동원상하릉으로 효종 영릉이 최초의 사례이며 이후 경종과 선의왕후의 의릉이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단지 왕릉을 두르는 담..

서울 정릉(사적208호),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

서울 성북동 북악산 뒷편 자락에 위치한 정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이다. 태조는 신덕왕후가 죽자 능을 덕수궁 부근에 자신의 능역과 함께 조성하고 원찰로서 흥천사를 세웠다. 그런 연유로 원래의 정릉은 조선이 건국하면서 처음으로 조성한 왕릉으로 고려 왕릉을 참조하여 조성하였다고 한다. 왕자의 난으로 등극한 태종은 정릉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석재 일부를 청계천 광통교를 보수하는데 사용하고 목재들을 태평관 건축에 사용하는 등 홀대하였다고 한다. 태종대에 신덕왕후는 평민으로 강등되었기때문에 그 이후 오랜기간동안 일반 무덤처럼 관리되었다고 조선후기 현종대인 1669년에 송시열 등이 계청으로 신덕왕후로 복권되면서 종묘에 배향되고 현재의 모습으로 재조성되었다고 한다. 처음 정릉을 조성했..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 건원릉,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왕릉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1408년에 승하하자 조성한 왕릉인 건원릉을 중심으로 역대 왕과 왕후의 능 9기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동구릉에는 한 분만 모신 단릉, 두분을 모신 쌍릉, 한곳에 산줄기를 달리해서 모신 동원이강릉, 두분을 함께 모신 합장릉, 세분을 나란히 모신 삼연릉이 있어 다양한 모습의 왕릉을 볼 수 있다. 동구릉에 왕릉을 조성한 왕으로는 태조를 비롯하여 5대 문종과 왕비, 14대 선조와 왕비, 16대 인조의 계비 장령왕후, 18대 현종과 왕비, 21대 영조와 왕비, 추존왕인 문조와 왕비, 24대 헌종과 왕비이다. 조선시대에는 왕릉의 조성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로 풍수지리설에 따라 심혈을 기울여 터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구릉에 왕릉이 조성된 왕은 대체로..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 24대 헌종의 경릉과 20대 경종 비 단의왕후의 혜릉

구리 동구릉(사적193호)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무덤을 중심으로 후대 왕들이 무덤이 계속 조성된 대표적인 왕릉이다. 동구릉에는 태조의 능인 건원릉을 중심으로 총 9곳의 왕릉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태조가 죽은후 풍수지리설에 따라 하륜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후에도 5대 문종을 비롯하여 선조, 영조 등 여러 왕과 왕비들이 계속해서 이곳에 능을 조성하였다. 시기에 따라서 동오릉, 동칠릉 등으로 불리다가 철종대에 헌종의 능이 조성됨으로서 9곳의 왕릉이 있는 동구릉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왕릉의 터를 잡는 것은 넓은 지역을 능역으로 조성하고, 풍수리지리상 길지가 적합한지는 이론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후대에 경쟁 정파의 공격을 받기 쉬운 까닭에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동..

서울 헌릉(사적194호), 조선초기 왕릉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조선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서울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 남쪽편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헌릉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를 모신 능이다. 조선후기 정형화된 왕릉과는 달리 고려왕릉의 형태가 남아 있는 조선초기 왕릉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헌릉은 태종과 원경왕의 봉분이 같은 언덕에 조선된 쌍릉으로 다른 왕릉과는 달리 봉분 앞에 혼유석,장명등 등 석물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또한 세조 이후의 왕릉에는 잘 볼 수 없는 병풍석을 두르고 있어 조선 왕릉 중에서는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또한 왕릉 앞에는 조선후기와는 달리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태종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로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태조대에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종을 옹립하고, 2차 왕자의 난 이후에는 종종을 이어..

서울 인릉 (사적194호),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조선 23대 순조의 능인 인릉이다. 외관상으로 하나의 봉분에 혼유석이 1개만 설치되어 있는 단릉으로 보이지만 순조와 순원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후기 왕릉의 일반적인 형태로 봉분에는 병풍석은 없이 난간석만 둘러싸여 있다. 석물 배치 또한 일반적인 왕릉과 큰 차이가 없는 정형화된 조선후기 왕릉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순조의 능은 파주 교하에 조성되었는데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철종대에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순원왕후는 능이 이곳으로 이장된 이후에 합장되었다고 한다.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정조 사후에 1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순조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정조의 개혁적인 조치를 되돌리는 복고적인 정치분..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홍릉, 영조가 자신의 무덤으로 터를 잡은 영조 비 정성왕후의 능

홍릉은 고양시에 위치한 서오릉에서 가장 후대에 조성된 능으로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 서씨의 능이다. 정성왕후는 영조가 연잉군시절에 결혼하여 66세에 죽었는데, 왕비시절에 선왕인 숙종과 경종의 부인을 잘 모시고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최씨를 모시는 사당인 육상궁을 세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왕자를 낳지 못했지만 영조와는 상당히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는 숙종과 왕비들의 능이 있는 서오릉에 자신의 능을 조성하여 숙종을 잇는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이곳에 정성왕후의 능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왕위를 계승한 정조는 사도세자를 죽게한 영조에 대한 원한이 있었고, 계비인 정순왕후 또한 영조와 같은 곳에 묻힐 의도가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 능을 조성하지 않고 구리의 동구릉에 영조의 능을 조성하여 그의 바램..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경릉과 창릉, 세조의 두아들 덕종(추존)과 예종의 능

경기도 고양시 신도동에 소재한 서오릉은 예종의 창릉과 숙종의 명릉을 비롯하여 많은 조선왕실을 능원이 조성된 곳으로 태조의 능이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많은 능원이 있는 곳이다. 서오릉은 1457년(세조3)에 의경세자가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세조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길지로 추천된 이 곳에 안장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세조가 터를 잡은 곳으로 그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과 왕비의 능이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서오릉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경릉은 세조의 장남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추존)과 어머니로 인수대비로도 많이 불리는 소혜왕후의 능이다. 서오릉 안쪽에 위치한 창릉은 세조의 둘째아들로 왕위를 계승한 예종과 안순왕후의 능이다. 예종 또한 20세의 ..

남양주 광릉(사적 197호), 후대 왕릉의 모범이 된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

광릉수목원으로 더 잘 알려진 경기도 남양주시에 소재한 광릉은 조선 7대 세조와 왕비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광릉은 조선 왕릉의 표준을 제시한 능으로 세조의 유명에 따라서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받아들인 통일신라시대 이후 왕릉과 귀족들의 무덤에 사용하였던 석실과 십이지신상 등을 새겼던 병풍석을 없애서 왕릉조성에 들어가던 경비를 크게 줄였다고 한다. 왕릉을 수호하는 것을 상징하던 12지신상 대신에 난간동자석주를 새기고, 석실은 회격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능을 배치함에 있어서 정자각을 중심으로 왕과 왕비릉이 양쪽 언덕에 배치되는 동원이강의 형식이 처음 적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조선의 왕릉제도를 크게 바꾼 것으로 후대 왕릉 조성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광릉을 지키는 원찰로는 근처에 위치한 봉선사가 있다. ..

서울 정릉, 서삼릉에서 옮겨온 중종의 능

강남 선정릉에 있는 중종대왕의 능인 정릉이다. 원래 중종의 능은 고양 서삼능에 있었으며, 그 당시에는 그 곳을 정릉으로 불렀다가 중종의 능이 이 곳으로 이장하면서 서삼능에는 장경왕후의 능만 남고 이름도 희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는 정능의 이관을 주도했던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의도였던 것으로 보이며, 문정왕후 자신은 이 곳 정릉에 묻힐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불교를 크게 중흥시킨 문정왕후는 중종과 자신의 내세를 위해서 원찰로서 봉은사를 보우대사와 함께 크게 일으켰는데, 실제로 문정왕후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서울 동쪽 동구릉 부근의 태릉에 묻혔다. 아마도 당시 중종의 능인 정릉의 이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던 것 같고, 지금도 정릉은 태조 이성계의 능과 함께 유일하고 ..

고양 서삼릉 예릉, 조선이 마지막으로 조성한 국왕(철종)의 능

고양 서삼릉의 예릉은 조선이 법규에 의해 조성한 마지막 능으로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이다. 고종과 순종의 경우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었기때문에 실질적으로 예법에 맞게 국가에서 시행한 마지막 왕릉이 되었다. 예릉은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주도로 왕권 강화를 보여 주기 위해 석물과 부속 건축물을 웅장하게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속건물로는 정자각과 비각이 남아 있고, 제례를 준비하던 부속건물인 수라방은 없어지고 수복방은 지금은 초석만 남아 있다. 조선 왕릉 상당수가 농협을 비롯한 농수산부에 산하 기관에서 접수해서 그런지 주변에 아름다운 길과 목장풍경으로 유명한 원당종마목장과 농협대학을 비롯한 유사 기관들이 모여있다. 조선 25대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인 예릉 전경. 홍살문, 정자각, 비각, 능..

고양 서삼릉, 의령원과 효창원

원당 종마목장과 농협대학이 위치한 서삼릉에 있는 의령원과 효창원이다. 효창원을 정조의 아들이 문효세자의 묘소로 원래는 서울 효창공원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의령원은 사도세자의 첫째 아들인 의소세손의 묘소로 정조대왕의 형님이 되는 분으로 그런 연유로 해서 이 곳으로 효창원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앞쪽에 의령원이 있고, 뒷쪽에 효창원이 있는데 격에는 잘 맞지 않은 것 같아 보이지만, 효창원을 후에 이 곳으로 옮겨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효창원과 의령원 앞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전각이 있는데, 능이 아니라서 그런지 정자각 형태를 하고 있지는 않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의소세손의 묘소인 의령원. 어린나이에 죽어서 그런지 영조가 직접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의령원 앞에 있는 석물. 영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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