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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합루 4

[창덕궁] 궐내각사 규장각, 조선 왕실의 도서관이자 학술연구기관

창덕궁 궐내각사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 왕실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규장각이다. 조선초기 세종이 창설했던 학술 연구기관인 집현전의 예를 본받아 정조가 즉위하던 해인 1776년에 창설된 기관이다. 창덕궁 외조 출입문 앞을 흐르는 금천을 기준으로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규장각은 책을 보관하던 주 건물인 규장각을 비롯하여 검서관들이 근무했던 검서청, 역대왕들의 글과 그림을 봉안하던 봉모당, 입구의 행각, 뒷편의 책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장각은 원래 숙종대에 왕이 지은 글인 어제와 왕의 글씨인 어필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작은 건물이었으나, 정조대에 규장각을 확장하여 창덕궁 후원에 2층건물을 짓고 1층에 규장각 현판을 걸고 정식 정부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정조는 규장각에 기존의 어재.어필..

조선 관아 2012.09.25

[고궁박물관특별전] 다시 찾은 조선왕실 의궤와 도서, 조선의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

문치주의와 유교적 사회를 추구한 조선은 건국초부터 문물제도의 정비, 지식의 보급, 인재 양성 등 국가 통치라를 위한 수단으로 다양한 도서를 수집, 편찬하였다. 조선시대 서적의 편찬은 중앙정부에 서적 편찬을 위한 관청을 두고 많은 종류의 서적을 발간하였으며, 지방정부인 감영과 민간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서적들을 출판하였다. 조선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일성록'은 그 자료의 방대함과 일관성 있는 기록 등으로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조선시대 문서 및 서적의 관리는 중앙 정부의 학술기관인 집현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여, 홍문관, 규장각 등으로 계승되었으며, 전국에 사고와 외규장각을 설치하여 이런 방대한 자료들을 ..

지역박물관 2012.02.03

[중앙박물관 조선실] 영조의 탕평정치와 정조대 문화의 진흥

18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휴유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병자호란 이래로 송시열을 중심으로 계속되어온 당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영조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역량과 권위로 조금이나마 제압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또한 중국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중심으로 안정화된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영.정조대를 대표하는 정책으로는 탕평책으로 대변되는 당쟁의 극복과 왕권의 확립, 균역법으로 대표되는 조세개혁을 통한 경제 안정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조대는 규장각을 중심으로 활성화된 학문장려, 중국 문물됩과 함께 크게 융성한 실학, 대량 출판을 통한 지식의 확산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큰 변화를 겪었던 시기였지만, 당시 영국과 프랑스를 중..

중앙박물관 2011.02.04

서울 창덕궁 후원 - 부용지 주변 주합루, 어수문

부용지 북쪽편 언덕에는 정조대왕이 자신 만의 공간을 마련하여 사색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이층 누각에서는 문신들과 대화를 하거나 저술을 하고 일층에는 규장각이라 하여 서고로 사용햇다 한다. 주합루에서 내려다본 부용지의 풍경이 뛰어나고 하나 지금은 출입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부용지 입구에서 바라본 어수문과 주합루 영화당에서 바라본 어수문, 주합루 주합루 정면에 있는 부영정에서 바라본 모습 입구인 어수문에서 올려다 본 주합루 주합루의 입구인 어수문 주합루의 울타리인 취병 정조가 즉위하던 해에 주합루가 완성됐다. 실학의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절에 정조는 등극하여 유능한 문신들과 더불어 문치에 노력한다. 임금 자신이 박식하여 많은 저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서책들을 많이 출판하였다. 주합..

궁궐_종묘 201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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