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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14

해사박물관, 충무공 이순신장군 행적

진해 해군사관학교 교내에 있는 해사박물관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행적에 대한 기록과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되었던 조선 수군의 여러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행적을 보여주는 각종 고문서류들로는 후손들이 쓴 이충무공행장, 정조대에 편찬된 이충무공전서, 난중일길, 서간첩, 후대에 쓰여진 각종 전기류들을 수집.전시하고 있다. 실제로 전시된 유물들 중 원본을 전시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아산 현충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류들의 영인본을 교유적차원에서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진품은 아니더라도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것들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한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충무공 이순신은 1545년 4월 28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32세인..

지역박물관 2012.04.26

거북선(龜船), 원형과 가장 가깝게 복원된 해군사관학교 선착장에 정박되어 있는 거북선

거북선(龜船)은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만들오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헌을 한 거북모양을 하고 있는 배이다. 거북선은 고려말 또는 조선초에 이미 만들어져 사용되었던 것으로 많은 문헌상에 남아 있으나, 임진왜란 만들어진 창제귀선이 최초의 철갑선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해전에서 돌격용 전함으로 만들어진 거북선은 기존 조선수군의 주력함선인 판옥선을 개량하여 상판에 철갑을 두르고, 거북머리를 하고 있는 형태로 임진왜란 초기에 선봉함으로서 그 위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이때 만들어진 창제귀함은 그 형태나 제작방법이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현재 복원되어 있고, 널리 알려져 있는 거북선은 정조대에 쓰여진 '이충무공전서'에 그림으로 묘사된 전라좌수영에 있는 귀선으로 원래의 창제도선인과 같은지는 잘 알려져 ..

충무공 유적지 아산 현충사 충무공 옛집, 고택 사당

아산 현충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옛집입니다. 최근 신문지상에 경매에 나왔다고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던 그 고택입니다. 70년대 현충사 성역화로 충무공의 후손인 종손은 이 고택을 비우고 나갔으나 소유권이 정리되지 않은 까닭에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충무공 후손이 번창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 업적에 누를 끼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이충무공이 살던 고택입니다. 건물은 옛날 그래로의 모습은 아니고 한식 목조건물입니다. 대대로 종손이 살아왔던 집으로 현충사 성역화에 따라 이주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종손도 없어져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는 건물입니다. 이충무공 고택의 왼쪽편에 있는 작은 쪽문입니다. 안채로 들어..

고택_정원 2010.09.11

충무공 유적지 아산 현충사 활터, 치마장(馳馬場)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살았던 옛집 앞에 자리잡고 있는 활터입니다. 지금은 수령이 수백년된 은행나무 두그루가 서있고 남쪽 능선 아래에 과녁이 있습니다. 과녁 뒷쪽편 능선으로는 이순신 장군께서 말을 타고 달리시던 치마장(馳馬場)이 있어 충무공의 기개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현충사 경내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살던 옛집 바로 앞에 있는 활터입니다. 지금은 수령이 500년 이상된 은행나무 2그루가 서 있습니다. 현충사 경내 활터에서 보이는 과녁입니다. 원래는 지금의 과녁보다 50여미터 뒷쪽에 있었다고 합니다. 현충사 경내 활터에 있는 수령이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 두그루입니다. 활터 주변의 능선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말을 달리시던 치마장(馳馬場)입니다. 활터에서 동쪽으로 가면 충무공의 셋..

고택_정원 2010.09.11

충무궁 묘역 - 어제신도비, 충무공신도비, 이봉상신도비

이충무공 묘소 앞에 자리잡고 있는 정조대왕이 친히 비명을 지었다는 어제신도비입니다. 조선후기에도 임진왜란을 극복한 충무공의 노력이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어 도로입구에는 별도의 이충무공신도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 앞에 자리한 어제신도비 (御製神道碑)입니다. 정조대왕이 친히 비명을 지어 세워진 비라고 합니다. 충무공 묘소 앞에 있는 어제신도비에 적힌 글씨입니다. 최근에 만든 것처럼 아주 깨끗합니다. 어제신도비는 충무공의 공로를 치하하여 정조대왕이 친히 비명을 지어 정조 18년(1794년) 10월 4일에 세워진 비로써 이충무공묘소 아래에 있다. 어제신도비의 글씨는 중국 안진경의 묘에서 집자(集字)하여 새기고 호남의 도백 이형원에게 명하여 돌을 캐내 비로 사용토록한 기록이 정조실록에 보..

충무공 유적 아산 현충사 - 이면공 묘소, 후손 묘소

현충사 경내 충무공이 살았던 옛집 뒷동산 아래에는 충무공께서 가장 사랑했던 셋째 아들 이면공 묘소를 중심으로 많은 후손들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면공 묘소는 그 명성에 비해 매우 소박하게 꾸며져 있고 다른 후손들의 묘소는 당시의 지위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산 현충사 충무공 옛집 동쪽편 동산에 자리잡고 있는 충무공이 가장 사랑했다는 셋째아들 이면공 묘소입니다.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 계단을 설치한 것 같습니다. 실제 묘소는 장식이 거의 없는 아주 평범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충무공께서 말을 달리시던 능선 아래에 있는 이면공 묘소로 가는 길입니다. 안내표지판 충무공이 극진히 사랑했던 셋째아들 이면은 어려서부터 인물이 출중하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였다. 명량해전 이후 아산에서 어머..

아산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역

현충사 인근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소입니다. 충무공의 묘소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신 후 여러 차례의 이장을 거친 후 이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성역화된 묘소답게 주위에는 울창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고 입구에는 충무공을 기리는 신도비와 정조대왕이 친히 작성한 신도비도 같이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연못도 있습니다. 하지만 충무공 후손이 번창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흔히 말하는 명당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산 현충사 인근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소입니다. 충무공의 묘소는 현충사 경내에 있지 않고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관리가 잘되어서인지 주변에 소나무 숲이 울창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역 입구입니다..

[아산 현충사] 충무공 영정을 모신 본전

대표적인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유적지인 아산 현충사 본전입니다. 충무공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70년대 성역화 사업으로 만든 한국식 사당입니다. 전통적 사당에서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러운 멋은 부족하지만 당시의 경제력을 고려해서 최대한 노력한 결과 아주 웅장하게 보이기는 합니다. 현판도 순 한글로 '현충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현충사 본전 사당 주위의 조경에서 정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을 모신 현충사입니다. 대표적인 충무공 유적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생전에 충무공께서 사시던 고택 옆 언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70년대 지어진 한국식 사당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충사 본전의 출입문인 충의문입니다. 충의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본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러 단계..

[통영 충렬사] 입구, 동백나무, 강한루(江漢樓)

통영에 있는 이충모공을 모신 사당인 충렬사 입구의 모습입니다. 통영의 중심부 뒷동산에 자리잡고 있는 충렬사는 현충사와 더불어 가장 유서깊은 유적지 중의 하나입니다. 통영에 있었던 통제영에서 관리하던 사당으로 충무공 관련 유물 중 제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명황제가 하사한 팔사품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입구에는 수령이 수백년이 동백나무가 있고, 이 곳을 참배하러 온 시인.묵객들이 잠시 쉴 수 있는 누각인 강한루(江漢樓)가 있습니다. 통영 충렬사 입구에 있는 홍살문입니다. 보통 홍살문은 정문이라고도 하며 능(陵)·원(園)·묘(廟)·궁전·관아 등의 정면 입로(入路)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을 일컫는 말입니다. 조신시대에 유교 이념 확산을 위해 효자.열녀.충신 등에게 홍살문을 세우게 했는데 지금은 많..

충무공을 모신 통영 충렬사 (忠烈祠), 사당

통영 충열사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국왕이 사액을 내린 이충무공을 모신 사당으로서 통영에 소재한 수군통제영의 통제사가 창건하고 유지관리하던 사당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사당 중에서도 유서가 깊고 의미가 있는 사당입니다. 그리고 당시 명나라에서 충무공에 하사한 팔사품으로 보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 임진왜란의 의미를 생각하고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충무공을 모신 충렬사 사당이 있는 곳입니다. 뒷편에는 울창한 대나숲이 사당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충무공의 위패가 모셔진 충렬사 사당 본전입니다. 선조때 통제사 이운용이 창건했으며 남해 충렬사와 함께 국왕이 사액을 내린 사당입니다. 이 사당은 역대 수군통제사에서 관리.유지해 오던 사당으로 아주 유서깊은 ..

[아산 현충사] 구본전, 옛날 현충사 사당

아산 현충사 경내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옛날 사당인 구본전입니다. 현재 사당 근처에 있던 건물을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이 사당 건물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사당 건물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국민성금으로 지은 사당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도 충무공 종손이 경제적으로 곤궁하여 현충사 일대의 임야와 토지가 은행 경매로 넘어가게 된 것을 국민 성금으로 되찾았다고 합니다. 당시 모은 성금이 남아서 그 돈으로 충무공 사당인 현충사를 재건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산 현충사의 옛사당인 구본전입니다. 이 사당도 조선시대부터 있던 건물은 아니고, 일제 강점기에 국민의 성금을 모아 건립한 사당이라고 합니다.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기존 사당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현충사의 옛날 사당 건물임을 알려주는 한문..

[아산 현충사] 정려(旌閭), 연못

아산 현충사 경내 우측편에 자리잡고 있는 정려와 연못입니다. 수령이 수백년된 느티나무가 있고 그 옆에 마을 사람들에게 충신과 효부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정려가 서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옛날에는 이 곳이 마을 입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 옆으로는 70년대 현충사 성역화시 조성된 궁궐의 연못을 본 뜬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연못이 있습니다. 현충사 경내에 들어서면 오른쪽편에 커다란 연못이 있고 그 입구에 충무공과 그 후손을 기리는 정려가 있습니다. 네분의 충신과 네분의 효자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지금 충무공 후손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려에 걸려있는 현판입니다. 내용은 잘 모르겠만.... 안내표지판 정려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에게 임금이 편액을 하사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걸어두는 건물로 ..

[아산 현충사] 유물관, 현충사 경내 풍경

아산 현충사는 대표적인 충무공 유적지로서 70년대에 성역화되어 규모가 상당히 크고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현충사 일원에 정비된지 벌써 40년이 되어가고 있어 당시에 심어던 나무들이 아주 울창하고 그 동안 상당히 공을 들어 가꾸어 왔기때문에 아주 깨끗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충사 유물관에는 충무공과 관련된 유물 중 가장 중요한 난중일기를 보관전시하고 있습니다. 현충사 경내에는 소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조경면에서도 훌륭한 유적지라 할 수 있습니다. 아산 현충사 경내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유물관입니다. 국보로 지정된 난중일기 등 충무공 관련 유물들을 보관 전시하고 있습니다. 현충사 유물관은 1962년 4월 27일 충청남도에서 한식 목조로 현재 충의문 안쪽 좌측에 건립하고..

[아산 현충사] 정문 주변, 들어가는 길

이충무공의 유적지 중에서 제일 잘 알려진 아산 현충사입니다. 충무공이 젊은 시절 살았던 집과 뒷동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충무공 고택과 활터가 있는 곳에 서면 멀리 온양 시내의 넓은 벌판이 보이는 경치가 상당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70년대 이후 충무공 유적지로서 성역화되어서 가꾸어 왔기 때문에 수목이 우거지고 조경이 아주 잘 꾸며져 있습니다. 물론 최근 경매에 넘겨져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던 충무공의 고택도 이곳에 있습니다. 아산 현충사 정문인 충무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현충사의 전경입니다. 70년대에 정비한 문화유적 시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주 넓직한 길이 충무공 영정을 모신 현충사까지 뚫려 있습니다. TV프로에 가끔씩 등장하는 현충사 꽝꽝나무입니다. 흔히 보이는 사철나무와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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