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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영성 4

보령 오천항, 조선시대 천수만 주변 서해안을 지키던 충청수영이 있었던 항구

오천항은 충남 보려시 오천면에 있는 작은 어항으로 조선시대에는 충청수영이 있었던 군항이었다. 이 항구는 육지쪽으로 들어와 있는 작은 만에 위치하고 있어서 먼바다의 파도를 막아줄 뿐 아니라 바다와 육지에서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백제때부터 화이포라는 항구로 이용되어왔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려말부터 서해안에 출몰했던 왜구를 제압하기 위한 전진기지 충청수영이 이 곳에 설치되었으며, 많은 병선들이 정박했더 군사기지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오천항 주변에는 충청수영을 비롯하여 역사적인 명소가 많으며 조선시대에 이곳 충청수영에는 풍족한 해산물과 서해안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 많은 문인들이 찾았다고 한다. 또한 오천항은 국내 최대의 키조개 산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충청도 서해안을 지키던 충청..

한국의 풍경 2011.07.08

보령 충청수영성, 천수만 입구 조선시대 서해안 항로를 통제하던 수영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송리에 있는 작은 포구인 오천항은 조선시대 충청수영이 있었던 곳이다. 충청수영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한반도와 중국 해안지방에 극심한 피해를 입혔던 왜구를 견제하기 위히 설치한 수영으로 충청병마절제사가 있었던 해미읍성과 함께 서해안을 방어하던 요지였다. 충청수영은 조선초에 설치되어 수영인 폐지된 1896년까지 오랜기간 동안 존속했던 곳으로 조선 세종때의 기록에 의하면 산하에 배속된 군선이 142척에 수군이 8,414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충청수영의 주 임무는 삼남지방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인 쌀 등을 운반하는 조선선을 보호하고,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영역은 금강하구에서 경기만 일대까지라고 한다. 충청수영성은 오천항을 둘러싸고 있는 언덕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보령 충청수영 객사와 공해관 삼문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옛 충청수영 관아건물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객사 건물이다. 전라좌수영 객사인 진남관이나 통영의 객사인 세병관은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웅장한 데 비해서 충청수영 객사 건물의 그리 크지 않은 건물로 군현규모 고을의 객사와 비슷한 규모이다. 충청수영은 조선초 왜구의 침입을 견제하기 위해 설치된 이래 구한말 폐영될때까 존재했던 충청지역 서해안을 통제했던 해군기지로 해안을 따라 쌓은 성곽안에 수십동의 영사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충청수영 객사는 수군절도사가 왕을 상징하는 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던 장소이자, 중앙에서 온 관리들나 충청수영 산하의 장교들이 수영을 들렀을때 묵었던 숙소이기도 하다. 앞면 4칸, 옆면 2칸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왼쪽편 3칸을 대청마로, 오른편 1칸은 방으로..

조선 관아 2011.06.22

보령 충청수영 진휼청

보령군 오천면 소성리 일대는 서해 연안항로 천수만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천혜의 요새이자, 충청도 서해안 쪽의 넓은 평야지대인 내포평야 입구에 해당되는 곳이다. 조선시대 이곳에는 충청수영이 설치되어 금강하구에서 경기만까지 연안항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던 서해안 해군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충청수영이 설치된 보련 오천항에는 성곽과 많은 관아 건물들이 있었지만, 구한말 수영이 폐지된 이후 많은 건물들이 없어지고 지금은 성벽 일부와 진휼청, 객사만이 남아 있다. 충청 수영 입구이 홍예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이 진휼청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주택가와 가까이 있었던 까닭에 구한말 수영이 폐지된 이후 민가로 사용되다가 1994년에 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 이 건물 명칭은 전해지는 바가 ..

조선 관아 201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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