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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비 2

[성균관] 입구에 세워진 탕평비와 하마비, 문묘 출입문인 신삼문.동삼문,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향공간이 앞쪽에, 명륜당을 중신으로 한 강학공간이 뒷편에 위치한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성균관은 현재 옛 성균관을 계승한 성균관대학교와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이 대학교문에서 캠퍼스로 들어가는 길이 옛 성균관을 출입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지방의 향교나 마찬가지로 성균관 입구에서 성균관의 권위를 보여주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영조가 당쟁타파를 위해 세웠다는 역사적인 비석인 탕평비가 비각속에 있다. 하마비를 지나면 제향공간인 대성전 출입문이 신삼문을 볼 수 있다. 신삼문은 대성전, 명륜당 등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로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출입문이다. 신삼문은 신이 출입하는 문으로..

영조가 당쟁을 없애려 세운 성균관 탕평비

성균관 대학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영조가 세운 탕평비가 있다. 아마 당시 당쟁의 중심이 성균관 이었던 모양이었는지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웠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말을 잘안들어서인지 영조시대에도 탕평책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당쟁이 해소되지는 못한것 같고, 결국 그것이 조선을 멸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영조가 세운 탕평비입니다. 《예기》 가운데 한 구절인 <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 寔小人之私意(신의가 있고 아첨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마음이요, 아첨하고 신의가 없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가 적혀 있습니다. 성균관 대학 입구에 있는 성균관 탕평비 뒷면에 적힌 글씨입니다. 성균관 탕평비 기단과 지붕입니다. 성균관 탕평비가 있는 누각은 성균관 대학 입구에 있습니다. 역사는 참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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