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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무열왕릉비 2

경주 서악동귀부 (보물 70호),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묘비

보물 70호로 지정된 경주시 서악동 태종무열왕릉 앞 족에 남아 있는 서악동 귀부이다. 이 귀부는 비석을 받치는 거북받침돌로 태종무열왕릉비와 함께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초기 비석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조각상이다. 네발로 땅을 힘차게 디디고 있는 이 거북받침돌은 조각수법이나 기교면에서 태종무열왕릉비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사실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거북받침돌은 후대에는 용의 머리로 바뀌는데 거북머리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비석은 서악서원에 출토된 비몸에 기록된 글과 삼국사기 기록으로 볼 때 김인문의 공적을 새겨놓았던 비의 받침돌로 추정하고 있으며, 머리부분인 이수는 남아 있지 않다. 김인문은 태종무열왕이자 문무왕의 친동생으로 삼국통일전쟁에서 당과의 외교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죽..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국보 25호), 후대 비석의 모범이 된 조각수법이 빼어난 걸작

국보 25호로 지정된 신라 29대 태종무열왕릉 앞에 세워진 비석이다. 김춘추라는 본명도 같이 잘 알려져 있는 태종무열왕은 김유신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는 등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왕릉이 입지한 지역은 경주 형산강 서쪽 선두산 아래 대구와 영천으로 연결되는 옛 국도가 지나가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통일을 염두에 두었던 당시 경주를 위협할 수 있는 한반도 내륙 한강유역과 경주를 연결하는 교통로에 그의 능을 둠으로써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그의 능을 잘 볼 수 있게 하고, 신라 내부적으로 경주 서쪽의 방어에 크게 신경을 써야 한다는 왕릉 조성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태종무열왕릉비는 현재 비몸은 일부 파편만 남아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는 비각안에 거북모양의 받침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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