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퇴계이황 7

안동 호계서원(虎溪書院)

퇴계 이황과 제자들을 모신 호계서원(虎溪書院)이다. 조선 선조 8년(1575)에 백련사 절터에 여강서원(麗江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어졌다. 1605년에 대홍수 유실되어 다시 지었으며, 숙종대에 호계로 이름으로 사액을 받았다.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없어졌다가 강당만 새로 지었다. 강당은 앞면 3칸이 대청마루이고 양쪽에 앞면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원래는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와룡면 도곡리에 있었는데 1973년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이곳으로 옮겼다. 향후 안동댐 부근으로 옮길 예정이라 한다. 안동시 임하면 임하댐 아래에 위치한 호계서원. 호계서원은 퇴계 이황과 제자들인 류성룡, 김성일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강당만 복원되었다. 원래는 도산서원과 멀지 ..

영주 소수서원, 고려 유학자 안향을 모신 최초의 서원

조선시대 사설교육기관은 서원은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서원이라는 이름은 당나라에 집현전서원 등의 설치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주선 중종때인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안향 선생을 모시는 백운동서원이다. 이 서원은 명종때인 1550년 퇴계 이황의 건의로 임금이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적은 현판을 내리는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최초의 서원인 소수 서원은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세운 서원이지만,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사액서원으로 지정되는 등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소수서원은 최초의 상액서원답게 건물의 칸수도 많고 큰 규모의 서원으로 이 곳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

안동 도산서원, 퇴계 이황선생을 모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원

낙동강변 안동 도산면 토계리에 자리잡고 있는 도산서원은 선조 7년에 건립된 퇴계 이황 선생을 위패를 모시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선조8년(1575)에 명필 한석봉이 쓴 편액을 국왕이 하사하였으며, 광해군 7년(1615)에 월천 조목 선생을 종향하였다. 퇴계 이황 선생 제자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이 있으며 이들 또한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처음에는 이 두분도 도산서원에 배향되기로 하였으나, 두분의 서열을 정함에 있어서 지역에서 상당히 논란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서애 류성룡은 하회마을 인근의 병산 서원에, 학봉 김성일은 임하댐 부근의 호계서원에 모셔져 있다. 도산서원은 선현을 모시고 후진을 양성하는 영남 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으며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

안동 퇴계종택, 도산서원 인근 퇴계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집

도산서원 주차장에서 북쪽 언덕길을 넘어서 자동차로 조금 더 들어가면, 퇴계 선생의 종손이 사는 종갓집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퇴계선생 종택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후손인 하정공이 옛 종택의 규모를 짐작하여 세운 집이라고 한다. 종택은 낙동강과 가까운 앞.뒤로 작은 산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종택 앞 들판은 그리 넓지 않은 편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종택 건물은 앞면 6칸의 'ㅁ'자형 살림집과, 앞면 5칸의 추월한수정이라는 정자, 솟을대문과 행랑채,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으로 구성되어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구한말 경북 안동지역에서 유행했던 건물 양식들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종갓집에는 퇴계 종손이 아직도 집을 지키고 살고 있으며, 항상 손님들..

고택_정원 2010.10.20

안동 도산서원, 퇴계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던 도산서당

도산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중심영역으로 교학공간인 강당 전교당까지는 계단식으로 길이 조성되어 있고 서쪽편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서원 관리소인 하고직사가 있고 동쪽편에는 퇴계 이황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몸소 지은 도산서당이 있다. 아마도 강당과 기숙인 동.서재에는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퇴계 선생은 도산서당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당은 앞면 3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퇴계선생이 거처하던 '완락재'라 불리는 방과, '암서헌'이라고 불리는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 앞에는 연꽃을 심어 놓은 작은 연못이 있고, 도산서당 동쪽편으로 퇴계선생이 화초를 가꾸던 작은 동산이 있다. 도산서원 정문.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축대를 쌓아서 계단..

조선 관아 2010.10.18

안동 도산서원, 유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서재인 역락서재

퇴계 이황 선생이 세운 안동 도산서원은 계단식으로 건물들을 배치하고 있는데, 그 중 제일 앞쪽에 있는 건물들인 농운정사와 역락서재이다. 농운정사는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로 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서쪽편에 있는 건물이다. 서원 강당인 전교당 앞 마당에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지만, 아마도 이 곳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고직사 건물 앞에 추가로 세운 건물인 것으로 보인다. 역락서재는 서원 바깥에 있는 별채와 같은 건물로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을 위해서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서원 바깥쪽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도산서원을 찾아온 손님들이 묵으면서, 퇴계 선생과 학문을 논하던 장소인 것으로 보인다. 서원 안에 있는 유생들의 공부가 방해 받지 않도록 외부에서 손님을 맞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

조선 관아 2010.10.17

안동 도산서원, 과거시험을 보았던 시사단과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

2010년 가을에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조선시대 양반문화와 유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안동 도산서원을 찾아가 보았다. 주말이기도 하고 예전에 비해서 전통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이 곳 도산서원을 찾는 사람에 예전에 비해서 많이 늘었다는 느낌이다. 도산서원은 병산서원과 함께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경치가 매우 수려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서원이다. 도산서원의 입지가 상당히 좋다는 것은 학문을 수양하는 장소로서 일반인들이 도산서원까지 들어가기는 쉽지는 않지만, 큰길에서 도산서원까지의 길은 낙동강변 언덕을 따라서 나 있는 숲길이다. 하지만 낙동강 건너편으로는 제법 넓은 들판이 있고, 마을들도 많이 보이는 편이다. 이는 수양을 위해 깊은 산중이나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일반 세상과..

조선 관아 2010.10.1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