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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전 4

[창덕궁] 선정전(보물814호), 국왕이 집무를 보던 편전건물로 유일하게 청기와를 얹은 건물

선정전은 창덕궁의 편전으로 국왕 일상적인 업무를 보던 공간이다. 조선시대 국왕은 지금의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는데, 그 중 상당부분이 편전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요 일과라 할 수 있다. 편전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업무는 신하들과의 조정회의, 중요한 업무보고, 세미나 성격의 경연 등이 있다. 이곳에서의 모든 회의 내용은 사관이 참여하여 기록을 남겨놓는데 이를 사초라 하며, 사초의 내용을 바탕으로 당대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실록을 편찬하였다. 창덕궁 편전인 선정전은 경복궁과는 달리 정전과 일직선으로 배치하지 않고 자연환경에 맞추어 동쪽편에 배치되어 있다. 창덕궁은 원래 상왕이었던 태종을 위해 지은 이궁(離宮)으로 건물의 규모를 크게 짓지 않아기 때문에 경복궁 편전인 사정전에 ..

궁궐_종묘 2012.10.10

[창경궁] 편전인 문정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

창경궁 명정전 뒷편에 위치한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임금이 정사를 보던 곳이다. 일반적으로 편전은 법전 뒤에 나란히 위치하나 창경궁의 편전인 문정전은 동향인 명정전과는 방향이 다른 남향을 하고 있다. 문정전은 창경궁이 건립된 성종대부터 존재했던 건물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던 휘녕전이 이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조성하면서 철거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1980년대 창경궁 중창공사때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되었다. 건물은 궁궐의 편전건물로 격식을 크게 강조하지 않고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내부는 닫집이 있는 어좌를 중심으로 마루가 깔려 있는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국왕이 머무는 곳이라기 보다는 신하들과 국가의 중요..

궁궐_종묘 2012.09.11

[경희궁] 편전인 자정전(資政殿)

경희궁 정전인 숭정전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편전인 자정전이다. 편전은 국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던 등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경희궁은 국왕이 많이 머물렀던 궁궐이 아니었기때문에 편전이기는 하지만 숙종이 승하하였을 때는 빈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가 임시로 보관되기도 하였다. 자정전은 편전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크지 않은 규모의 건물로 행각으로 둘러져 있다. 우물마루가 깔려 있는 경복궁 편전인 사정전과는 달리 정전처럼 내부 바닥에 전돌이 깔려 있고, 건물을 크게 꾸며 놓고 있지는 않다. 광해군대에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경희궁 편전인 자정전을 들어가는 출입문인 자정문. 규모가 크지는 않고 소박해 보인..

궁궐_종묘 2012.08.17

[육군박물관] 조선시대 기본 무기인 칼(도검), 활(각궁), 노(弩)

조선시대 개인이 휴대한 기본 무기로는 칼과 활, 창 등을 들 수 있다. 한반도는 역사 이래로 북방유목민들이 침입에 대처해야 했기때문에 들판에서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산성에서 적을 방어하는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들판에서의 싸움도 대체로 세계적으로도 용맹스러웠던 몽골, 여진족을 상대해야 했기때문에 일반적인 개인무기인 칼이나 창보다는 먼거리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활을 주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내려와 유학을 공부하던 유생들까지도 평상시 활을 쏘면서 정신수양을 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은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복합활인 각궁은 세계적으로도 사거리나 명중율 측면에서 우수했으며, 유라시아 초원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복합활의 전통을 잘 계승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병사들이..

지역박물관 20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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