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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 김인후 2

[필암서원 유물전시관] 하서 김인후와 고암 양자징

하서 김인후는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로 전남 장성에서 출생하였다. 김인후는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과 학문을 닦았으며,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홍문관 박사 겸 세자를 가르치는 세자시강원 설서를 역임하면서 인종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종은 중종의 아들로 인품이 훌륭하고 학자들을 좋아했기때문에 연산군대 이후 중앙으로 진출한 사림출신 관료와 학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병약하여 즉위 8개월만에 사망하였다. 김인후가 학문적 업적도 뛰어났지만 인종의 스승이었던 점이 당대 및 후대 왕들과 학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큰 동기가 되었다. 김인후는 인종의 사망과 을사사화 등으로 실망하여 고향인 전남 장성으로 낙향하여 성리학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당대 및 후대 학계에서 인종의 스승이었던 점..

지역박물관 2013.03.12

장성 필암서원(사적242호), 호남 제일의 사액서원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소재한 필암서원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하서 김인후(1510~1560)을 모시기 위해서 1590년(선조23)에 세워진 서원이다. 전북 태인의 무성서원과 함께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영산강 중류지역 양반사회의 중심이 되었던 서원이다. 서원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을 제사를 모시는 기능과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기능을 갖고 있는데 필암서원은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더 중시되었던 서원이다. 처음에는 장성읍 기산리에 서원이 세워졌으나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인조대에 다른곳에 옮겼으나 수해를 입어 1672년(현종13)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1659년(효종10)에 '필암'이는 이름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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