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한옥 170

제천 청풍 후산리 고가

남한강변 청풍문화재단지에 옮겨진 고가들 중 가장 잘 지어진 한옥으로 생각되는 청풍 후산리 고가이다. 구한말인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ㄱ'자형 기와집으로 구한말에 유행했던 주택양식의 하나인 사랑방 앞에 내어 달아놓은 처마와 대청마루 한쪽편에 마련된 제사방을 볼 수 있는 가옥이다. 원래 청풍면 후산리에 있었던 주택으로 충주댐 건설로 그 지역이 수몰되면서 이 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5칸으로 서쪽편에 부엌과 안방으로 3칸을 날개채로 달아내어 놓고 있다.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가 있으며 대청마루 한쪽편에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던 감실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랑채는 별도로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건물 오른편에 2칸 규모의 건너방이 있는데 그 옆으로 큰 툇마루를 두어..

고택_정원 2011.06.05

한국민속촌 한옥, 내자원

용인 한국민속촌 안쪽에 위치한 조선시대 내시 사설 양성소인 내자원이다. 멀리서 보면 규모가 큰 민간 가옥처럼 생간 건물로 안채, 안사랑, 숙소, 도자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구조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이었던 향교나 서원과 크게 다르지 않지면, 건물들이 붙어 있어서 마당이 넓은 편이 아니며, 내시 양성소라서 그런지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다. 조선시대 내시의 직위가 낮지 않고,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집단이라서 그런지 3개의 출입문이 있는 솟을대문을 하고 있으며, 강당처럼 교육장소였던 것으로 보이는 안사랑과 안채는 나름대로 화려하게 꾸며놓고 있다. SBS사극 의 촬영장소 였다고 한다. 원래의 건물을 제대로 고증해서 만든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내자원 내자원은 조선시대 내시 사설 양성소이..

조선 관아 2011.06.05

제천 청풍 황석리 고가

남한강변 제천 청풍문화재 단지에 복원되어 있는 청풍 황석리 고가이다. 이 가옥은 청풍면 황석리에 있었던 것을 충주댐건설로 이 곳으로 옮겨서 복원했다고 한다. 이 가옥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양반가옥이지만 안채와 작은 문간채만 있을뿐 사랑채를 별도로 두고 있지는 않다. 안채는 기와를 얹은 '-'자형 건물로 앞면 4칸 규모로 그리 크지는 않으며, 부엌 앞쪽에 툇간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제사를 비롯한 집안행사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농기구나 곡식 등을 저장하는 광이 없고, 소를 키우던 외양간 또한 없는 것으로 봐서는 농지를 많이 소유한 부유한 지주계층도 아닌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부유하지 않은 시골양반이 살았던 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물규모에..

고택_정원 2011.06.03

한국민속촌 한옥, 99칸 중부지방 양반가 대저택

용인 한국민속촌에 있는 한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99칸 중부지방 양반가 대저택이다. 이 가옥은 19세기에 수원 화성내에 지어졌던 것을 한국민속촌을 조성하면서 옮겨진 건물이라고 한다. 이 가옥은 구한말 상류층 사회의 호화로운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근검을 강조하던 조선사회가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저택이다. 이 저택의 규모는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이나, 경복궁 후원의 건청궁보다 넓고 건물칸수도 많은 것으로 보이며, 궁궐 건물에서 사용했던 건물을 연결하는 복도를 설치하는 등 당대 최고의 호화주택을 만들려고 했던 의지가 여러곳에서 보인다. 사회질서가 안정적이던 영.정조때까지는 이런 규모의 건물을 짓기는 쉽지 않았지만 사회질서가 붕괴된 19세기 세도정치 기간동안에 전국적으로 많은 호..

고택_정원 2011.06.02

청품 도화리 고가, 충북지역 양반 가옥

청풍문화재 단지로 옮겨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옛 청풍지역의 고가 중 하나인 청풍 도화리 고가이다. 이 가옥은 원래 청풍문 도화리에 있었던 집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ㄷ'자형을 이루고 있는 주택으로 중앙 3칸을 대청마루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인 주택이다. 원래는 경사진 언덕에 뒷편은 낮은 기단을 쌓고, 앞쪽은 높은 기단을 쌓아서 만든 가옥이라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평지에 복원해 놓고 있어서 옛 모습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오른쪽 건물이 사랑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끝부분에 3면에 문과 툇마루를 두고 있는 사랑채가 있다. 반면에 왼쪽 건물은 방과 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채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다. 청풍 도화리 고가 전경. 조선말기에 지어진 집으로 'ㄷ'자형 건물 배치를 하고 있..

고택_정원 2011.06.01

한국민속촌 한옥, 중부지방 산촌민가 (초가삼간)

한국민속촌에 있는 중부지방 산촌 민가이다. 이 가옥은 민속촌이 설립되기 이전부터 주민이 살았던 집으로 산촌지역에서 벌을 키우던 주민이 살던 집이다. 앞면 3칸으로 방과 부엌만이 있는 가장 가난한 사람이 살았던 초가삼간이 이 가옥을 지칭한다고 했다. 목재 기둥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벽면을 토담으로만 쌓고, 그 위에 초가을 올려 놓은 형태이다. 조선시대 가난한 서민들이 살았던 흔적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가옥으로 민속자료로 보존 중이라고 한다. 중부지방 산촌민가 이 가옥은 전형적인 초가 삼칸 형태를 띠는 민가로 민속촌이 설립되기 전 실제 원 주민이 살았던 집이다. 방과 부엌만 갖추고 있으며, 토담으로 지어진 중부내륙의 산촌 가옥이다. 벌을 양봉하던 집으로 벌꿀 집으로도 불리는데 민속자료로 보존중인 가옥이다..

고택_정원 2011.05.30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민가 (중농계층)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남부지방 민가이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주계층의 가옥과는 달리 광을 많이 두고 있지는 않다. '-'자형으로 되어 있는 안채는 앞면이 5칸 정도로 큰 규모이나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지 않다. 안채 뒷편에 사랑방을 두고 있다. 사랑채는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으며 2개의 방과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설명에는 사랑채로 되어 있는데 독립된 가족이 살 수 있는 별채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이 많지 않고, 외양간이나 농기구 등이 많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경제력이 있었던 중농이상의 계층은 아니고 식구가 많은 평범한 계층이 살았던 주택으로 보인다. 남부지방 민가, 19세기 양식 일자형을 기본으로 한 안채는 부엌에 딸린 부엌방을 약간 달아내어서 변화를 보였다..

고택_정원 2011.05.28

제천 수산 지곡리 고가, 청풍문화재단지 한옥

제천 청풍문화재 단지에 소재한 수산 지곡리 고가이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옛 청풍면 지역의 관아 건물을 중심으로 수몰지역에 있던 여러채의 고가들을 옮겨 복원해 놓고 있는 곳이다. 청풍도호부 동헌과 한벽루가 문화재 단지를 대표하고 있지만, 이 곳에 옮겨 놓은 고가들 또한 수몰지역을 대표하는 한옥 건물로서 남한강 일대에 살았던 옛 사람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수산 지곡리 고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수산면 지곡리에 있었던 한옥이다. 집의 규모는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자존심이 높았던 선비계층이 살았던 한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가옥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ㄱ'자형으로 지어진 안채만이 팔작기와집이며, 사랑채와 행랑채는 초가를 얹은 '-'자형 건..

고택_정원 2011.05.28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민가 (고리백정 집)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남부지방 민가이다. 이 가옥은 외형으로 봐서는 'ㄱ'자형 안채와 '-'자형 아래채로 구성되어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주택이어서 중농계층에서 살았던 가옥으로 보인다. 한국민속촌 설명에 의하면 버들공예을 주업으로 하는 가옥으로 공방과 창고로 쓰이는 방이 많다고 한다. 조선시대 버들공예를 주업으로 살던 사람들은 천민계층으로 '고리백정'이라고 불렀으며, 유명한 의정 임꺽정의 직업 또한 고리백정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천민인 백정들의 경제적으로는 실제로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가옥의 규모로 봐서는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설명이 맞는지 의구심이 갖게도 하지만, 원래 버들공예를 하던 고리백정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집을 쉽게 지을 수..

고택_정원 2011.05.24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농가 (중농계층 가옥)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남부지방 농가이다. 'ㄱ'자형으로 된 안채와, '-'형의 사랑채, 헛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옥의 구조로 볼 때 선비계층이 살던 집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경제력을 갖춘 중농계층에서 살던 집으로 보인다. 남부지방 농가로서는 드물게 안채를 'ㄱ'자형으로 만들었는데, 19세기에 지어진 가옥으로 서울 지방 한옥의 모습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건물의 배치가 안채를 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집안 행사에 필요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한 양반 가옥과는 달리 생활의 편리함을 강조한 주택으로 보인다. '-'자형으로 만든 사랑채는 서재 역할을 했던 양반집 사랑채와는 달리 가내수공업에 필요한 작업공간 용도로 꾸며진 것으로 보인다. 남부지방 농가 남부지방 농가로서는 매우 드물게 '..

고택_정원 2011.05.23

제천 청풍 응청각, 한벽루와 함께 있는 작은 정자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소재한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작은 정자인 응청각이다. 원래는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읍리에 있었던 것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관아에서 운영하던 누각인 한벽루 옆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응청각 또한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방이 개방되어 있어서 관아에서 주최하던 각종 연회에 이용되었던 한벽루와는 달리 응청각은 조선시대 중요 교통로에 위치해 있었던 청풍도호부를 방문하는 VIP급 인사들이 묵었던 숙소로 보인다. 비슷한 형태의 정자들을 강릉 경포대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응청각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집으로 온돌시설은 없고,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2층 누각에 마루방을 두고 있다. 겨울에는 추워서 사용하기 힘들었을 것..

조선 관아 2011.05.20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소농가

용인 한국 민속촌에 복원된 한옥 중 가장 작은 주택 중 하나로 조선시대 남부지방 서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ㄱ'자형에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이 가옥은 평야지대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로 내륙 산간지방에서 볼 수 있는 주택구조라고 한다. 작은 광, 큰 부엌, 2개의 방으로 구성된 단촐한 규모를 하고 있는데, 산간지방이라서 산짐승의 출몰에 대비하기 위해서 남부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개방적인 '-'자형 가옥과는 달리 폐쇄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남부지방 소농가 남부지방의 가옥을 옮겨온 것으로 두 개의 방과 부엌, 외양간을 갖춘 작은 농가이다. 안방과 윗방 사이에 마루나 토방이 없는 작은 규모로, 이러한 구조는 내륙산간지방에 많이 나타나는데 폐쇄성이 반영되어 있다. 흔히 가..

고택_정원 2011.05.17

용인 한국민속촌, 남부지방 중농가 (시골 선비집)

용인 한국민속촌에 '남부지방 중농가'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한옥이다. 전형적이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자형 주택으로 나름 격식을 갖추어서 지은 한옥이다.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며, 전체적을 방의 갯수도 많고 넓게 지어진 주택으로 농업에 종사하던 농민계층이 살던 집은 아니고 나름 전통이 있다고 생각하는 시골선비가 살던 집이라고 한다. 방 4개, 부엌, 대청마루로 된 안채는 살림집으로는 부엌이 큰 편이며, 대청마루는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반면에 사랑채에는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이는 시골선비로 종손이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집안의 장자로 집안행사나 제사가 많았던 집이 아니었나 생각되며, 안채에는 조상의 신위를 모시는 감실도 두고 있다고..

고택_정원 2011.05.16

원주 김두한 가옥, 조상묘를 관리하기 위한 재실

원주시 문막읍 건등리에 위치한 '김두한 가옥' 이라고 이름 붙여진 한옥 건물이다. 이 가옥은 260여년전 원주 목사를 지낸 김탄행의 묘를 관리하기 위한 재실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중앙에 넓지 않은 마당을 두고 있다. 'ㄱ'자형으로 된 안채는 넓은 부엌과 대청마루, 3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깥쪽에는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사랑채를 두고 오른쪽에는 문간채를 두고 있다. 마당 안쪽에는 방이 2개있는 앞면 3칸짜리의 작은 부속채를 두고 있다. 이 가옥은 제사를 비롯하여 집안 행사를 위해서 만든 건물로 주택과는 달리 형식적인 내용은 배제하고, 행사때 일을 보는 사람들의 동선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제사를 준비하는 넓은 부엌이 건물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

한국민속촌 한옥, 북부지방 민가 (중농계층 가옥)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해 놓은 한옥 중 북부지방 민가이다. 'ㄱ'자형 안채와 사랑방이 있는 '-'자형 문간채, 광채로 구성되어 있는 가옥으로 규모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로 중농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던 집으로 보인다. 추운 북부지방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구조로 전체적으로 'ㅁ'자형으로 건물을 배치해서 마당으로 추운 겨울바람이 적게 들어오게 만들어 놓고 있다. 또한 남부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큰 대청마루나 마루방, 툇마루 등을 두고 있지 않는 반면에 방은 남부지방에 비해서 상대적 크게 만들어 놓고 있다. 북부지방 민가 북부지방의 민가를 복원한 것으로 중부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ㄱ'자형 안채와 '-'자형 문간채, 광채가 튼 'ㅁ'자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는 민가이다. 남부지방 민가와는 대조적으..

고택_정원 2011.05.12

한국민속촌 한옥, 북부지방 민가 (중소지주계층 가옥)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북부지방 민가이다. 안채와 문간채, 사랑채, 광채, 별채로 이루어진 규모가 큰 가옥이다. 전체적으로 초가을 얹은 '-'자형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추운 북부지방의 가옥이라서 그런지 대청마루나 툇마루를 거의 두고 있지 않으며, 많은 수의 방을 두고 있다. 이 가옥은 또한 농기구나 곡식 등으로 보관하기 위한 광을 많이 두고 있으며, 작은 방만 3칸이 있는 별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대가족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가옥의 규모로 봐서는 농업경영에 기반하여 상당한 경제력이 있는 중소지주계층의 가옥으로 생각된다. 북부지방 민가 이 가옥은 북부지방의 가옥을 복원한 것으로 일곱채의 집이 특이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민가이다. 안채와 문간채, 사랑채, 광채의 4동을 기본으로 튼..

고택_정원 2011.05.07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민가 (지주계층 가옥)

한국민속촌에 전시된 한옥 중 '남부지방 민가'로 이름 붙여진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한옥이다. 이 한옥은 호남지방 주택 형식인 '-'자형의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다. 살림집인 안채는 앞면 6칸에 옆면 3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안채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안채와 사랑채가 한 건물이 있는 구조이며,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서쪽편에는 부엌과 안방이 있고, 동쪽편에는 사랑방이 있다. 바깥채 또한 앞면 6칸규모이며, 문간과 광, 외양간, 머슴이 살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평야지대인 호남지방에서 농업경영으로 상당한 경제력이 있었던 중농이상의 지주계층이 살던 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에는 상당한 고가의 자산인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 있고, 농사일을 하던 머슴을 두고 있었으며, 안방이나..

고택_정원 2011.05.05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소농가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전통 가옥 중 남부지방 소농가이다. 3칸을 겨우 넘는 일(-)자형 주택으로 농민들이 살았던 작은 집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붕은 초가를 얹고 있으면 '-'자집이라서 크지 않아 보이지만, 앞면이 4칸에 옆면이 2칸반으로 한옥 중에서는 작지 않은 규모이다. 건물 오른편에는 툇마루가 있는 사랑방과 건넌방이 있고, 사랑방과 안방을 벽면과 마루로 분리하는 등 격식을 갖추고 있는 주택이다. 부엌의 규모 또한 상당히 큰편으로 식구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주택은 건물이 크고 격식을 갖춘 것으로 봐서는 몰락한 양반이나 자영농을 하는 경제력을 갖춘 농민의 주택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의 건물에는 없으나 이 집에 광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광, 외양간, 문간방이 있는 별채와 같이 있는 것..

고택_정원 2011.05.03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대가

용인 한국민속촌에 전시된 한옥 중 '남부지방 대가'로 이름 붙여진 한옥이다. 이 가옥은 호남지방의 가옥을 옮겨온 것이라고 하며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 저택은 구한말인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전통적인 한옥의 모습에서 약간 벗어나,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다양한 모습으로 세련되게 꾸며놓은 저택이다. 이런 형태의 건축은 구한말에 많이 나타나는데 가장 오랜기간 동안 국왕이 사용했던 궁궐 건물인 창덕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사랑채에 누마루를 두고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서 툇마루를 많이 만들어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민속촌에 전시된 이 저택은 구한말 대토지를 소유한 호남지역 갑부들의 저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건축물의 형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건물은 'ㄷ'자형의 안채와 'ㄱ..

고택_정원 2011.04.28

용인 심곡서원,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대표적인 서원

정암 조광조는 14세때 성리학자 김굉필 문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며, 과거에 급제한 이후 호조,예조,공조의 좌랑, 홍문관 승지, 부제학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유학자 정치를 구현하려는 중종의 신임을 받아서 다양한 개혁정치를 추진하였다. 이후 조광조의 개혁에 반감을 가진 중종반정 공신을 중심으로 한 훈구세력의 역공을 받은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했다. 정암 조광조는 조선전기와 후기를 구분짓는 역사적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후대에 조선사회를 주도했던 사림세력을 추앙을 받았다. 정암 조광조를 모신 서원은 용인 심곡서원, 서울 도봉서원 등 전국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용인 수지신도시에 위치한 심곡서원은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묘소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적인 중요성으로 인해서 구한말 흥선대원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