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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서울 창덕궁] 희정당, 국왕의 침전

younghwan 2010. 9. 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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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정당은 원래는 국왕의 침전이었던 장소였으나, 구한말 이후 일제 시대에 서양식으로 개조되 조선의 궁궐이 주는 본래의 멋은 없으졌으나 구한말 이후 서양식으로 궁궐이 개조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라서 건축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한다. 구한말에 개조해서 그런지 중국 북경 건물의 양식을 많이 차용한 듯 하다.

희정당 입구입. 구한말의 서양식 건축양식이 추가되어 약간은 중국식 건물과 비슷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희정당 본래의 건물. 보통 조선의 궁궐 건축물에는 이런 형태로 폐쇄된 마당은 거의 없고 서양식으로 개조하면서 이런 형태의 건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희정당의 측면과 뒷편에서 본 외관.

희정전 내부 응접실에는 서양식 가구가 놓여져 있다. 내부의 양쪽 벽에는 해강 김규진이 그린 <금강산만물초승경도>, <총석정절경도>가 걸려 있다. 긴복도를 통해서 내부를 서양식으로 개조한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희정당의 건물과 건물사이를 연결해 주고 있는 복도. 한국의 건축물에는 이런 폐쇄된 형태의 복도는 흔하지 않고 중국식 건축 양식의 가미된 느낌입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통로

낙선재 가는 길에서 본 희정당 정면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건물을 지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수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희정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일제시대인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1920년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11칸·옆면 4칸으로 한식건물에 서양식 실내장식을 하고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 9칸·옆면 3칸을 거실로 하고 주위는 복도로 사용하였다. 앞면 9칸 중 3칸은 응접실이며 서쪽은 회의실로 꾸미고, 동쪽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었다. 응접실에는 김규진의 금강산도, 해금강도 등의 벽화가 걸려있다. 건물 앞쪽에는 전통 건물에서 볼 수 없는 현관이 생겼고 자동차가 들어설 수 있게 설비되었다. 이는 마차나 자동차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채택된 서양식 구조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시대에 왕의 사무실과 외국 사신 등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로, 시대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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