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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서울 창덕궁] 대조전, 왕비의 침전

younghwan 2010. 9. 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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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조전은 창덕궁 내전의 으뜸 전각으로 왕비의 침전으로 1917년 화재로 소실되어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 지었다고 한다. 내부는 일부 서양식으로 꾸며졌고 건물 전체적으로 구한말 이후의 생활상을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다. 창덕궁에서 국왕 들이 많이 거쳐 했기 때문에 구한말 이후 많은 개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조전 출입문 안쪽으로 보이는 대조전

대조전 편액

왕비의 침실인 대조전입니다. 대부분 왕비가 거처하는 장소는 국왕이 거처하는 장소의 뒷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복궁 건물을 뜯어다가 일제시대에 새로 만든 건물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왕비가 거처했던 건물인데, TV사극에 나오는 궁궐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모습이다.

대조전 내부는 거실처럼 꾸며져 있으며 바닥에는 쪽널마루를 깔았으며 중국풍의 의자가 놓여 있다. 일제 시대때 궁궐을 사용하던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대조전 건물들 내부. 한옥식 출입문도 있지만 유리문들이 많이 있다.

대조전의 출입문인 선평문.

대조전 내 부속건물. 대부분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궁궐의 모습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다.

국왕의 침실인 희정당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조전 앞 마당. 희정당과 연결된 길을 통해 올라 오면 계단위 횃불을 밝히는 것과, 측우기 등이 있다.

대조전 앞 마당에 있는 해시계

대조전 앞에 있는 조명 장치. 예전에 쓰던 횃불을 밝히는 것과 근대에 설치된 전등이 보인다.



대조전은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이다. 이 건물에서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효종이 죽었고, 순조의 세자로 뒤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조선 태종 5년(1405)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를 비롯하여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지었다. 1917년 또 화재를 당하여 불에 탄 것을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고 그 부재로 이곳에 옮겨지어 ‘대조전’이란 현판을 걸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기 때문에, 건물 자체는 물론 주변의 부속 건물들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대조전은 현재 36칸으로 앞면 9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 가운데 3칸은 거실로 삼았으며, 거실의 동·서쪽으로 왕과 왕비의 침실을 두었다. 각 침실의 옆면과 뒷면에는 작은 방을 두어 시중 드는 사람들의 처소로 삼았다. 건물 안쪽에는 서양식 쪽마루와 유리창, 가구 등을 구비하여 현대적인 실내 장식을 보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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