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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박물관

오르세미술관 (Musee d'Orsay) - 장 프랑수아 밀레(Millet, Jean-Francois), 에두아르 마네(Manet, Edouard)

younghwan 2010. 1. 2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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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오르세미술관 1층에서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이자,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은 아마도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일 것입니다.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전시공간이 배치되어 있는 듯 합니다.

마네의 대표작이자 오르세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입니다. 이 작품에는 화면 뒤쪽의 여인을 제외하고 두명의 남성과 그가 아끼던 모델 빅토르뫼랑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탁월함과 진보적 성격을 알아 볼 수 없었던 비평가와 대중들은 이 작품이 매우 불경스럽다고 하여 논란이 되었던 작품입니다.  

명화와 함께....

마네의 또다른 대표작인 <에밀졸라의 초상>입니다. 소설과 에밀졸라가 당시에 혹평을 받았던 작품들에 대한 찬사를 보내주었고 그 보답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마네 사후에 에밀졸라가 추모전에 서문을 썼기때문에 작품가격이 폭등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네의 작품 <투우, Combat de taureaux>입니다.

마네의 작품 <Anguille et rouget>입니다. 요리에 쓰일 생선을 생동감있게 표현한 작품이네요. 관련 자료가 없어서...

<Clair de lune sur le port de Boulogne> 마네 작품으로 <볼로냐항의 달빛>으로 해석되고 있네요..

마네 작품 <Portrait d'Irma Brunner>

마네 작품 <La serveuse de bocks, 1879>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 Olympia, 1863> 입니다. <올랭피아>는 마네가 가진 화가로서의 재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밝은 색조와 어두운 색조를 적절히 배치하는 능력, 어두운 색조의 미묘한 뉘앙스를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의 모델은 <풀밭위의 점심식사>의 모델과 동일한 인물입니다.

마네의 작품 <발코니, The Balcony, 1868-1869>입니다. 화면속에는 친구이자 동생의 부인이 되는 여류화가 베르트 모리조, 화가 기르메 등이 등장합니다. 마네는 색채의 대조를 통해 화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순백색의 의상을 입은 두명의 여자와 어두운 색의 위상의 남자와 실내 배경의 어두운 색조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마네의 작품 <La blonde aux seins nus, 1878>입니다.

마네의 작품 <Berthe Morisot à l'éventail, 1872> 입니다.

Manet, Edouard
당대의 사건과 상황에서 주제를 선택하고, 그림이란 대상을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화폭 위에 색채를 배치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회화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1863년에 낙선전에 전시된 그의 〈풀밭 위의 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는 비평가들의 비난과 젊은 화가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는데, 이 젊은 화가들이 후에 인상파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 인상주의). 그밖에 유명한 작품으로는 〈올랭피아 Olympia〉(1863)와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A Bar at the Folies-Bergère〉(1882) 등이 있다. <출처:브리태니커>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세 여인이 남은 이삭을 줍고 있는 풍경입니다. <만종>과 함께 이 <이삭 줍는 여인들>은 밀레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레의 사실주의적인 표현이 잘 나타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삭줍기> 옆에 있는 밀레의 작품은 <Le repos des faneurs, 1848>입니다.


Millet, Jean-Francois
바르비종파의 주도적 인물로 소박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농민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밀레는 농사를 지으면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19세쯤 되어서는 셰르부르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837년에 그는 파리로 와서 폴 들라로슈의 문하생으로 등록했는데, 이 화실에는 1839년까지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밀레는 1849년에 파리를 떠나 퐁텐블로 숲속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에 정착했다. 그는 농부를 그린 그림을 계속 발표했고, 그결과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밀레의 입장을 옹호하던 그당시의 편지들은 그림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고전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1860년대 중엽에 이르자 밀레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1867년의 전시회에 9점의 주요작품을 출품한 뒤인 1868년이었다. 미국 보스턴의 미술관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이삭줍기 The Gleanes〉(1857, 루브르 박물관)·〈만종 The Angelus〉(1855~57, 루브르 박물관) 등 밀레의 중요한 그림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만종〉은 해질 무렵의 빛의 효과를 이용해 시적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창조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출처:브리태니커>

<참조> 1. 세계 미술관 여행, 시모나 바르텔레나/임동현 옮김,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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