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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해협 입구에 위치한 초지진은 임진왜란 이후 비상시 수도역할을 해야 하는 강화도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조직인 5진 7보 중 하나로 원래 안산 초지량에 있는 수군을 병자호란 이후 강화로 옮기고 진(鎭)으로 승격시킨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초지진은 강화도 동남해안의 제물포에서 염하를 지나 서울로 향하는 수로를 지키던 군사조직으로 종4품이 만호를 수장으로 산하에 성암돈, 장자평돈, 초지돈을 관할하고 있다. 북쪽으로 덕진진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선두보와 경계를 이룬다.

 초지진은 북동해안의 월곶진과 함께 강화도와 한양으로 향하는 수로를 지키는 중요한 지역으로 구한말 신미양요 때 미군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되었고, 그후 일본이 일으킨 운양호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초지진은 산하에 초지돈대를 포함하여 함선 3척과 40여문의 대포가 있는 포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신미양요 때 미군과의 전투에서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운양호 사건때 일본 함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70년대에 초지돈대만 복원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의 흔적으로 소나무에 당시 포탄을 맞은 흔적이 남아 있다.



강화해협 입구를 지키던 초지진의 초지돈대. 원래는 다른 진(鎭)과 같이 문루도 있고 산하에 포대와 군선도 있었으나 신미양요와 운양호 사건때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현재는 초지돈대만 복원되어 있다.


초지돈대는 강화도 남동쪽 끝에 있었던 돈대로 지금은 남쪽으로 농토가 있지만 원래는 갯벌이었던 것을 간척하여 농토로 바뀌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지돈대는 그리 높지 않는 곳에 설치한 돈대로 다른 곳에 비해서 석축이 높고 견고한 편이며, 윗쪽에 여장을 설치해 놓고 있다.


초지돈대를 출입하는 출입구. 다른 돈대에 비해서 출입구가 큰 편이며, 철문이 설치되어 있다.


초지돈대 내부에서 본 출입문


돈대 석축 위쪽에는 조총 공격에 대비하여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후기에 볼 수 있는 성곽의 형식으로 서울성곽과 수원화성에서 여장을 볼 수 있다.


초지돈대는 타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3문의 대포를 설치할 수 있는 3개의 포좌와 100여개의 총좌가 설치되어 있다.


현재 초지돈대 내부에는 초지돈대에 설치되었던 화포가 전시되어 있다.


이 화포는 구한말 신미양요때 사용되었던 화포라고 한다.


화포를 설치하였던 포좌


미군 함대와의 격렬한 전투가 있었던 신미양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초지돈대 남쪽 언덕에 있는 '포탄 맞은 소나무'이다.


이 소나무에는 지금도 포탄 맞은 흔적이 남아 있어 그 부분이 울퉁불퉁하다.


초지돈대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덕진돈대에서 내려다 본 초지돈대와 초지진. 낮은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강화 초지진 건너편에 있는 대명포구에서 본 초지진과 주변의 풍경.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안산의 초지량에 수군의 만호영이 있었던 것에서 처음 비롯되었는데 1666년에 초지량영을 이곳으로 옮긴 뒤 ‘진’으로 승격되었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이곳은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였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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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 초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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