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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파주 윤관장군묘(사적 323호), 고려시대 여진을 정벌한 윤관장군 무덤

younghwan 2014. 1. 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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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파주에 소재한 고려시대 명장이자 문신인 윤관 장군의 묘역이다. 그는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때 문과에 합격하였고, 숙종 9년(1104)에 국경을 침입한 여진과 싸웠으나 패하였다. 그 후 여진정벌을 위해 별무반을 편성해 예종 2년(1107)에 여진을 정벌한 후 9성을 쌓았다. 고려중기 중원을 제패한 금나라가 성립되기 직전에 무장인 척준경과 함께 여진족을 제압한 인물로 위패는 예종의 사당에 함께 모셔졌고, 고려 태조와 충의공신을 모신 숭의전에서 함께 배향되었으며, 후대에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윤관 장군의 무덤은 조선초기 후손들이 조상의 무덤의 위치를 찾지 못했단 다른 사람들이 무덤처럼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으나, 조선 영조 23년(1747) 후손들이 조선중기 문신인 심지원의 묘가 있었던 지금의 자리가 윤관장군의 무덤임을 주장하여 영조 40년(1764)에 공인되었다. 이 묘역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동안 청송 심씨와 파평 윤씨간에 많은 분쟁이 있었고 최근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양쪽 가문은 조선시대 왕비를 3명, 4명씩 배출한 까닭에 아주 까다로운 송사였다고 하며, 심지원은 윤관장군의 무덤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선산을 조성하고 무덤을 마련하였지만, 윤관 장군의 묘를 침탈한 것으로 오해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금나라가 건국하기 전에 여진을 정벌하였던 그 공에 매우 크고, 후대에 존경을 많이 받고 있기때문에 청송심씨 집안에서 대승적차원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인근 청송심씨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윤관 장군묘, 사적 323호,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고려 예종 때 여진정벌에 큰 공을 세운 윤관(~1111)의 묘이다. 윤관은 파평 윤씨로 고려 문종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숙종 9년(1104) 세력이 커진 여진족을 정벌하라는 왕명을 받고 싸웠으나, 고려군은 여진의 강한 기병을 당할 수 없었다. 특수부대인 별무반을 새로이 편성하여 예종3년(1107) 별무반을 이끌고 함경도 쪽으로 진격하여 여진족을 북방으로 몰아내고 동북지방 일대에 9성을 쌓았다. 그후 여진히 영원히 배반하지 않고 조공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성을 돌려받기를 간청하여 고려도 동북쪽의 여진 토벌에만 국력을 기울일 수 없어 9성 일대의 땅을 여진에게 돌려 주었다. <출처: 파주시청>


고려시대 금나라가 건국되기 전의 여진족을 정벌한 윤관 장군의 묘역이다. 그 공이 아주 크고 후손들이 번창해서 그런지 묘역의 규모가 웬만한 왕릉의 규모와 비슷하다.


윤관장군의 무덤. 석물들은 이곳이 윤관장군의 무덤임을 공인한 영조대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무덤 앞에 세워진 비석


석물들.


무덤 앞에서 내려다 본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일대. 이곳은 서울에서 개성, 평양, 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며, 인근에 고려시대 사찰이자 숙박시설이었던 혜음원지와 파주 용미리석불입상이 있다.


윤관장군 사당


사당 출입문


윤관장군 사당


오른편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성격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재실 용도의 건물


관리인 살림집


2013년 윤관장군 묘역


2009년 윤관장군 묘역


파주와 벽제를 연결하는 오래된 길.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산 4-1에 위치한 윤관 장군 묘역(사적 제323호)은 조선시대부터 400여 년 동안 계속된 산송으로도 유명하다. 1614년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이 윤관 장군 묘를 파헤치고 부친 등 일가의 묘를 잇따라 조성하자, 이에 반발한 파평 윤씨가 1763년에 심지원의 묘 일부를 파헤치고 청송 심씨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였다. 다툼이 발생한 고양 지역의 군수는 명문가의 다툼에 개입하기를 꺼려 이 문제를 조정에 넘겼다. 결국 당시 임금이었던 영조는 윤관의 묘와 심지원의 묘를 그대로 두고 양 가문이 합의하도록 종용했다.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가 조선시대에 왕비를 각각 4명, 3명씩 배출한 외척 가문이었기 때문에 영조도 섣불리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평 윤씨 가문에서 이에 불복하여 심지원의 묘를 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오히려 곤장을 맞다 죽는 등, 두 가문의 불화는 더욱 깊어졌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노력이 있어 왔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2006년 음력 4월 10일, 파평 윤씨 대종회와 청송 심씨 대종회는 파평 윤씨 측이 이장에 필요한 부지를 제공하고 청송 심씨 측이 윤관 장군 묘역에 조성된 청송 심씨 조상 묘 19기를 이장하기로 합의하면서 조선시대부터 392년 동안 이어진 묘지 다툼을 끝내기로 하였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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