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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전 발견된 남한에서는 유일한 고구려 비석인 충주 중원고구려비입니다. 장수왕때 세워진 비석으로 알려져 있으며 삼국의 영역과 세력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비석입니다. 크기나 형태가 아주 평범해서 30년 발견될 때까지는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고 단지 동네 어귀를 지키고 있는 많은 비석 중에 하나로 간주되었던 유물입니다. 지금도 사전에 준비하고 가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하게 생겼지만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비석입니다. 인근에 신라의 영토임을 표현하고자 했던(?) 충주 중앙탑이 있고, 남한강을 굽이 보고 있는 고구려산성인 장미산성이 있습니다.

이천년의 세월 동원 충주 중원 입석마을 입구를 지켜왔던 중원 고구려비입니다. 옛날부터 있어던 비석이고 글자가 많이 마모되어 있어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던 비석이 30년전 장수왕때 세운 비석임이 새로이 밝혀진 역사적으로 중요한 비석입니다.

비석에 한자로 쓴 글씨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줌으로 확대해서 보니 글씨를 분간하기가 더욱 힘듭니다.

충주 중원 고구려비가 있는 비각 외부에 서 있는 모조품 비석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글자들을 또렷히 새겨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 놓으니까 보는 사람들이 참조할 수 있어 유익한 것 같았습니다.

충주 중원 고구려비에 적인 글자를 친절히 해석해 놓은 안내표지판입니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발경 당시 비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제위(諸位)’·‘사자(使者)’ 등 고구려 관직 이름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古牟婁城)’등의 글자가 보이고, ‘모인삼백(募人三百)’·‘신라토내(新羅土內)’ 등 고구려가 신라를 불렀던 말들이 쓰여 있어 고구려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라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출처:문화재청>

다양한 방향에서 본 중원고구려비입니다. 자연석을 이용해서 만든 비석으로 특별한 특징이 없기때문에 현재까지 보존된 것으로 보입니다.

충주 중원 고구려비를 보관하고 있는 비각입니다. 외관상 시골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각처럼 보입니다.

충주 중원 고구려비가 있는 남한강변입니다. 이 근처에 통일신라시대에 신라의 영토임을 알려주는 듯한 충주 중앙탑(국보)이 자리하고 있고 뒷편 산으로는 삼국시대 고구려 산성이 장미산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 곳의 삼국간 영토분쟁이 많았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는 5세기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유일의 고구려비로 높이는 203cm, 폭은 55cm이다. 만들어진 시기에 관해선 5세기 전반 광개토대왕 때 만들어졌다는 학설부터 6세기 평원왕 때 만들어 졌다는 학설까지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449년 장수왕 때 만들어졌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비석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1979년 4월로 발견 당시에도 마모가 심하게 진행되어 많은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형태는 넓적한 돌기둥처럼 보이며 자연석을 그대로 비석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후좌우 사면에 모두 글을 새긴 4면비로 정확한 글자수는 알 수 없지만 약 400자 정도의 글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서체로는 예서체와 해서체를 사용하고 있다. 마모가 심해 비문의 내용은 알아 볼 수 없지만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라는 표현을 통해 중원고구려비를 만들 당시 고구려군이 신라에 주둔했으며 고구려가 신라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를 이(夷)라고 칭하는 부분에서 고구려의 독자적 천하관을 확인할 수 있으며 중원에 고구려비가 세워진 것을 통해 고구려의 남쪽 국경이 중원(현재의 충주)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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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 중원고구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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