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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경주 임해전지 - 안압지, 기러기 날아다니던 연못

younghwan 2010. 2. 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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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압지는 불국사, 석굴암, 대릉원과 더불어 경주를 대표하는 유적지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별궁이었던 임해전지의 연못과 정원으로 도교 사상을 반영하여 아름답게 조성한 연못입니다. 기록으로는 문무왕때 연못을 파고 작은 동산을 조성하고 희귀한 새나 짐승들을 길렀다고 합니다. 창덕궁 후원과 경복궁 경회루의 역할을 같이 한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여의 궁남지는 소박한 멋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통일신라의 국력을 말해주듯이 안압지는 상당히 화려한 연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압지 서쪽편은 궁궐의 담과 같은 역할을 하며 직선적인대 비해 북쪽과 동쪽은 화려한 곡선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임해전지의 첫번째 복원 건물인 누각에서 바라본 동쪽편에 있는 첫번째 섬입니다.

안압지 서쪽편은 임해전지가 있던 곳으로 직선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안압지 연못이 해자의 역할도 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해전지 안압지 가운데 있는 조그만 두번째 섬입니다. 안압지 연못 곳곳에 자라고 있는 아름다운 연꽃을 볼 수 있습니다.

임해전지 안압지 제일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세번째 섬입니다. 안압지에는 크고 작은 세개의 섬을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임해전지 안압지 세번째 섬과 북쪽 연못가 사이로는 좁은 수로를 형성하고 있어 배를 타고 지나면서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임해전지 안압지 북동쪽에 조성해 놓은 크고 작은 12개의 봉우리입니다. 당시에 유행했던 도교사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임해전지 안압지 연못 북쪽편에서 본 임해전지 누각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임해전지 안압지 북동쪽에 조성해 놓은 봉우리 사이로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마치 계곡을 나와서 넓은 바다로 물이 흐르는 느낌입니다.

임해전지 안압지 연못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연꽃입니다.



신라 왕궁의 후원(後園)으로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674년(문무왕 14)에 완성되었다. 1975~86년의 발굴조사에 의해 유구가 밝혀졌는데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석축호안(石築護岸)과 서쪽 호안변에서 5개의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부정형(不整形)의 석축호안은 서쪽 호안선만 직선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호안은 굴곡이 심한 곡면을 이루고 있다. 입수구(入水溝)는 동쪽과 서쪽의 호안이 만나는 곳에 설치되어 있고 출수구(出水溝)는 북쪽 호안에 있으며, 연못 안에는 3개의 섬이 있다. 연못의 바닥에서 신라 왕족과 귀족이 썼던 일상생활 유물인 목선(木船)·목상(木像)·장신구·주사위 등과 불교미술품인 불상, 광배, '조로 2년'(調露二年:680)이라는 명문이 씌어 있는 보상화문전 등 다수가 발굴되어 번성했던 통일신라시대의 문화를 보다 총체적으로 복원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안압지는 한국조경사에서 통일신라시대 원지(園池)의 원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브리태니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서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자리를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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