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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경주 성덕대왕 신종 (국보 29호), 에밀리종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

younghwan 2011. 10. 2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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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동종인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일명 '에밀레종'라 불리는 국보 29호로 지정된 성덕대왕 신종이다. 이 성덕대왕 신종은 크기 뿐 아니라 동종에 장식된 문양 또한 상당히 아름답다. 종의 상하에는 꽃무늬가 새겨진 넓은 띠가 있고 가운데에는 가장 인상적으로 아름다운 두쌍의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종을 만들때 아기를 시주했다는 전설 때문에 어린애들에게는 상당한 두려움을 주는 유물이기도 하다. 처음 볼 때는 종 전체만 보았다가 점차 이 성덕대왕 신종에 새겨진 무늬 장식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문화재이다.

 이 종은 우리나라에 남이 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5m로 전체 중량이 18.9 톤에 이르는 큰 종이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혜공왕때인 771년에 완성된 것으로 종에 새겨진 글자로 원래부터 성덕대왕신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이 종은 성덕왕의 원찰인 봉덕사에 걸려 있던 것인데 절이 없어지면서 영묘사에 옮겨졌다가 조선시대에는 경주읍성 남문 밖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종으로 사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옛 경주박물관을 거쳐 197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종에는 비천상 등과 함께 이 종을 만들게 된 내력을 기록한 산문과 신라를 예찬한 운문, 종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 등이 새겨져 있다.



경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성덕대왕 신종. 종을 걸어두고 있는 건물이 하중을 견디지 못해서 최근에는 종 아래나 나무를 받쳐두고 있다.

성덕대왕신종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은 원래 성덕대왕(재위 702~737)의 원찰이었던 봉덕사에 있다가 이 절이 폐허가 되면서 영묘사, 경주읍성 남문 밖, 동부동 옛 국립경주박물관을 거쳐 19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이 종은 우리들에게는 '에밀레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종을 만들 때 어린 아이를 집어넣어 만들었는데, 종을 칠 때 나는 소리가 마치 아이가 그 어미를 부르는 소리아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의 전설이 망라되어 있는 조선 후기 읍지인 '동경잡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1920년대 종을 보다 신비롭게 보이도록 지어진 이야기로 생각됩니다. 과연 종을 만들 때 어린아이를 집어 넣었을까요? 살생을 금지하여 벌제조차 죽이지 않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집어 넣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범종을 만들었을까요?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펼친 결고, 사람 뼈를 이루는 성분인 '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종입니다. 특히 아름당은 종의 형태와 무늬, 심금을 울리는 종소리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습니다. 종 한 가운데 손잡이 달린 향로를 받쳐 들고 있는 비천의 모습은 성덕대왕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염원하는 듯 하지 않나요? <출처:경주박물관>


성덕대왕 신종 (일명 '에밀레종')의 몸통. 아래와 위쪽에는 꽃무늬가 있는 띠로 장식되어 있고 종을 치는 부분에는 연꽃 모양의 장식과 그 양쪽에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범종
종은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그리고 의식을 거행할 때 쓰였습니다. 특별히 절에 있는 종은 불교를 의비하는 '범'자를 붙여 범종이라고 부릅니다. 이 범종 소리는 부처님의 말씀에 비유되기도 하며, 이 소리를 듣게 되면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던 중생까지도 구제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 한자로 종하면, '쇠 금金'변에 '아이 동童'자가 붙은 '종鐘'자를 씁니다. 중국이나 일본 종을 일컬을 때는 이렇게 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종을 지칭할 때는 '쇠 금金'변에 '무거울 중重'자가 붙은 '종'자를 씁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종에 새겨진 글씨나 기록에 쓰였기 때문입니다. 중국, 일본 종고 우리나라 종은 그 모습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종을 매다는 종뉴는 중국식의 머리가 둘 달린 용이 아니라, 머리와 다리를 힘차게 뻗치고 있는 한마리의 용입니다. 이 종뉴 옆에는 중국이나 일본 종에는 없는 음통이 있습니다. 또한 중국 종이나 일본 종과 달리 종의 위아래에는 보상화무늬나 모란당초무늬를 새긴 띠와 4개의 유곽이 있으며, 유곽내에는 각각 9개씩, 총 36개의 유두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천상과 종을 치는 부분에 당좌가 새겨져 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성덕대왕 신종에 새겨진 두쌍의 날아 오르는 듯한 비천상이으로 이 종을 상징하는 장식이기도 하다. 비천상은 당좌와 당좌 사이에 새겨진 장식으로 종에 따라서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 불.보살상, 보살입상 등이 장식된다.


성덕대왕신종 비천상 (2011년)


또다른 한 쌍의 비천상


비천상 사이에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 연꽃무늬로 장식하고 있으며 후대에 만들어진 다른 범종에 비해서도 무늬가 선명하게 남아 있어 당시 범종을 만드는 기술 수준을 잘 보여준다.


비천상과 당좌


비천상과 당좌 (2009년)



성덕대왕 신종 아래에 새겨진 넓은 띠와 그 안 새겨진 꽃무늬로 하대라고 불린다.


2009년 종에 제대로 걸려 있는 모습.


2011년에는 종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지 나무로 바닥을 받쳐두고 있다.


종의 상부에는 상대라 불리는 무늬 띠가 있고, 그 아래쪽에 연꽃 봉우리 형태로 돌출된 장식한 유두와 유두를 싸고 있는 네무난 무늬띠로 유곽이 있다.


성덕대왕 신종에 새겨진 연꽃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유두와 유곽. 종에는 4곳에 유두와 유곽이 새겨져 있다.


성덕대왕 신종 맨위에 위치한 종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 중국이나 일본종에는 없는 우리나라 범종 고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성덕대왕 신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고 뒤쪽편에는 음통이 있다.


뒤쪽에서 본 종이 걸려 있는 부분. 종의 윗부분에는 종뉴와 음통이 있는 넓고 편평한 종의 윗부분인 천판과  천판 바깥쪽을 돌아가며 있는 장식 무늬 띠인 견대가 있다.


성덕대왕 신종에는 종을 만들게 된 내력을 적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탁본. 성덕대왕 신종 뒷면에는 찬시 및 종을 만든 이들의 직함과 이름 등이 있다. 글을 지은 이는 신종 앞면의 글을 지은 한림랑급찬이며, 글씨는 대조 벼슬을 한 요단이 썼다고 한다.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글은 무슨내용일까?

성덕대왕 신종에는 두 군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 면에는 성덕대왕신종을 만들게 되기까지의 기록인 산문이 있고, 그 반대 면에는 네 글자씩 50줄로 된 운문과 글을 짓고 쓴 사람, 종을 만든 사람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산문은 '성덕대왕신종지명'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종의 이름이 성덕대왕신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라 경덕왕이 선대왕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구리 12만근으로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하자, 경덕왕의 아들 해공왕이 즉위 7년만인 대력 6년(771년) 신해년 12월 14일에 종을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운문은 우선 삼국을 아우른 신라를 에찬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나라 구석까지 성스러운 교활 펴 모든 것이 새롭게 뻗어 나가게 하고,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질서를 기반으로 만대의 번영을 누리자는 각오와 다짐을 적고 있습니다. <출처:경주박물관>


성덕대왕 신종은 경주 국립박물관 서쪽편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성덕왕릉. 성덕왕과 효소왕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손자이자 신문왕의 아들로 통일신라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으로 경주에서 불국사로 가는 국도와 철도가에 토함산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구릉 말단이 평지와 만나는 곳에 나란히 능을 마련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실측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불렀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따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유두를 사각형의 유곽이 둘러싸고 있다. 유곽 아래로 2쌍의 비천상이 있고, 그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연꽃 모양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몸체 2곳에는 종에 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특히 종 입구 부분이 마름모의 모서리처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있다.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또한, 몸통에 남아있는 1,000여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새긴 수법도 뛰어나, 1천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오고 있는 문화재로 앞으로도 잘 보존해야 할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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