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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양평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보물 361호)

younghwan 2012. 5. 2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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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보리사터에서 발견된 고려 초 승려인 대경대사 탑비이다. 머릿돌에 새겨진 구름과 용의 무늬가 인상적으로 중국에서 많이 본듯한 느낌을 준다. 받침돌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는데, 비석의 크기에 비해서 작아 보인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에 활동한 성주산문의 대경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비로 양평 보리사 절터에서 발견되어 경북궁으로 옮겨졌다고 현재는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비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받침돌과 비몸, 머리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북받침돌에 비해서 용으로 장식되어 있는 머리돌을 크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고 있다. 머릿돌에 새겨진 용무늬 장식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있다.

 대경대사는 처음에는 교종을 배웠으나 나중에는 선종을 연구하였으며, 당나라에서 돌아와 경순왕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비문에는 대경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을 새겨 놓고 있는데, 당시의 문장가인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을 썼다고 한다. 거북받침돌의 머리가 용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점등 고려 전기의 탑비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태조 22년(939)으로 진경대사가 입적한지 9년이 지난 후라고 한다.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보물 361호로 지정된 양평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 비몸이나 머릿돌에 비해서 거북받침돌이 왜소해 보인다. 거북받침돌은 통일신라 전성기에 세워졌던 많은 비석들에 비해서 조각수법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옆쪽에서 본 현기탑비. 정면에서 볼 때보다는 거북받침돌이 더 왜소해 보인다.


통일신라 전성기를 지나면서 많이 쇠퇴된 조각기술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한 거북받침돌. 전체적으로 조각에 힘이 넘치지 않고, 생동감이 부족해 보인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머리를 하고 있다.


옆에서 본 거북받침돌. 육각형으로 새긴 거북등껍질은 크기도 작고 정교하지 못하다.


뒷쪽에서 본 거북받침돌


비몸에는 대경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을 새겨 놓고 있는데, 당시의 문장가인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을 썼다고 한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의 글씨체는 상당히 힘이 넘친다.


거북받침돌의 조각수법은 이전에 비해서 상당히 떨어지는데 비해 용과 구름이 새겨진 머릿돌은 상당히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용과 구름이 새겨진 머릿돌


양평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


2009년 여름의 모습



양평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 보물 361호, 고려 939년
이 탑비는 신라말에서 고려 초기에 활동하던 성주산문의 대경대사 여엄(862~930년)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대사가 입적한 지 9년이 지난 고려 태조 22년(939)에 세워졌다. 거북받침돌의 거북머리가 용머리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탑비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머릿돌의 구름과 용은 매우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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