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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로 들어가는 제2연륙교인 초지대교를 건너가면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 신미양요의 격전지인 초지진을 만날 수 있다. 초지진은 인천쪽에서 염하를 거쳐 한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조그만 규모의 해안가 진지이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전까지는 남쪽에서 한강을 침입하려는 외적이 많지 않아서 인지 또는 지형자체가 그래서인지 초지진은 덕포진이나, 광성보 등에 비해서 규모는 작은 편이고 넓은 평지와 도로 옆에 바로 있다. 아마 예전에는 초지진 아래쪽 논밭 들은 갯벌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10년쯤 전에는 초지진 아래쪽은 들어 가는 도로도 없었던 것 같고, 초지진 아래쪽 마을 이름도 황산도이니, 초지진이 강화도 염하에서는 제일 남쪽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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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아래에서 바라본 초지진 성벽, 성벽이라기는 좀 그렇고 포탄, 총탄 등을 막기 위한 방어벽 정도 역할을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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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쪽에서 바라본 초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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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성벽을 담쟁이 덩굴로 다 덮혀 있네요. 옆에 있는 소나무가 신미양요때 포타 맞은 소나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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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편 대명포구에서 바라본 초지진, 초지진 앞은 갯벌로 되어 있어 침입하는 적이 밀물때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썰물때 꼼짝없이 갯벌에 갇히게 됩니다.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1656년 구축한 요새이며, 1679년에 축조된초지진, 장자평돈, 섬암돈이 초지진 소속이었다. 진장(鎭將)으로 1666년에는 병마 만호가 있다.  초지진 외곽 초지진  1763년에 첨사가 있었고,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 183척의 배가 배치되어 있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일본군함 운양호 침공 등 근대외침에 줄기차게 싸운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23일 미국 로저스 휘하의 아시아 함대 침공시 450명의 미 육전대가 초지진에 상륙하여 덕진, 광성진을 공략하였고,  1875년 8월 21일 초지진 포대에서는 일본의 운요호와 격렬한 포격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73년에 초지진을 복원하였는데, 지금까지도 노송과 성벽에는 당시의 포탄 자국이 남아 있고, 초지진 내에는 조선군이 사용하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출처: 강화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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