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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두돈대는 광성보에서 염하 해안의 숲길을 따라서 한참을 가면 나온다. 용두돈대는 김포와 강화사이에서 수심이 가장 빠르고 폭이 좁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용두돈대 반대편 김포쪽에는 덕포진이 있어 양쪽으로 이 염하를 지난 배를 공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좁은 바다를 그냥 통과해서 한강으로 썰물이 오기전까지 통과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곳으로서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라 할 수 있다. 이 해협을 손돌목이라 하고 인종의 무능과 관련된 손돌목의 전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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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로 들어가는 좁은 성벽길입니다. 용두돈대는 육지에서 약간 돌출된 부분에 돈대를 쌓고 적을 방어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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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로 들어가면 신미양요 당시의 돈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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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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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에서 용두돈대로 가는 숲길입니다. 여름에는 무척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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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목앞 해안가 언덕에 있는 손돌목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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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 앞 손돌목입니다. 지금도 세찬 물살이 흐르고 있습니다. 손돌목의 전설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던 천연 요새로서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병인,신미양요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1977년 성벽을 복원 하면서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를 세웠다.

 손돌목 돈대는 조선 숙종(1674-1729,재위)때 축조된 돈대이다. 원래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처가 있었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가 108m이고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출처: 강화군청>
<손돌목 전설>
조선시대 인조로 추정되는 왕이, 강화도로 피신하게 되어 배를 타게 되었다.  손돌은 경험이 많은 뱃사공으로 왕의 배를 젓게 되었느데, 왕이 앞을 내다보니, 손돌은 위험하게 보이는 여울 쪽으로 노를 젓는 것이었다. 두려운 생각이 든 왕이 "여울물 쪽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지만, 손돌은 계속하여 위험한 여울 쪽으로 노를 저어갔다. 왕이 손돌을 의심하여 손돌을 죽이라고 명령하자, 손돌은 "여울은 위험해 보이지만 그 길이 강화도로 가는 안전한 길"이라고 설명하였으나, 왕은 믿지 않았다. 손돌은 체념한 뒤 바가지 한 개를 올리면서 "만약, 배를 저어가다 뱃길을 잃게 되면, 이 바가지를 배 앞에 던져 이 바가지를 쫓아가십시오." 라고 마지막 말을 한 뒤 처형되었다. 손돌이 처형되자, 초겨울의 북서풍이 세차게 불고, 배를 가눌 수 없게 되어 침몰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이 때 손돌이 남긴 바가지를 배 앞에 던지니 바가지는 배 앞에서 떠가는 것이었다. 왕이 탄 배는 바가지가 떠가는 대로 뱃길을 잡아 강화도에 도착하였고, 왕은 손돌의 사당과 비석을 세웠다.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경에는 북서풍이 거세게 불어오는데 이를 손돌풍 이라 하며, 매년 음력 10월 20일에 손돌묘에서 제사를 지낸다. 손돌이 죽은 곳을 손돌목 이라고 한다. 광성보에 들어가면 손돌목돈대가 있다. 손돌목돈대 동쪽 아래에 있는 용두돈대로 가면, 용두돈대 앞의 염하가 손돌목이다. 손돌묘는 용두돈대 건너편의 덕포진에 있다. <출처:강화도 닷컴>
http://www.kanghwado.net/GwanGwang/JeonSeol/SonDolPung/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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