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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영토확장 의지가 담겨 있는 중원 고구려비에 대비되는 단양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단양신라적성비이다. 중원 고구려비, 장미산성, 온달산성 등 신라 진흥왕때 신라와 고구려 간의 투쟁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양 적성비가 위치한 적성산성은 경상도에서 중부지방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통로 중의 하나인 죽령 고개를 넘자마자 나타나는 단양의 중심지로서 전략적 의미가 상당히 높은 지역이다. 산성 아래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어, 이 지역을 장악했다는 것은 충북지역 상당부분을 장악했다고 할 수 있기때문에 그 의미를 높게 사서 적성비를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단양 신라 적성비에는 440자 정도의 글자가 적혀 있다고 한다. 비문 내용은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는데 공을 세운 지역민들의 공을 치하하는 내용이라고 하며. 유명한 장군 이사부 등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단양 신라적성비 비각

단양 신라 적성비는 남한강변이 보이는 적성산성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적성비가 있는 적성산성은 중앙고속도로 서울방면 단양휴게소에서 쉽게 걸어서 올라갈 수 있어서 접근성이 용이하다. 적성산성에서 멀리 영남과 중부지방의 교통로인 죽령이 보인다.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1978년에 30㎝ 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비면이 깨끗하고 글자가 뚜렷하다. 비(碑)는 위가 넓고 두꺼우며, 아래가 좁고 얇다. 윗부분은 잘려나가고 없지만 양 측면이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고, 자연석을 이용한 듯 모양이 자유롭다. 전체의 글자수는 440자 정도로 추정되는데, 지금 남아있는 글자는 288자로 거의 판독할 수 있다. 글씨는 각 행마다 가로줄과 세로줄을 잘 맞추고 있으며, 예서(隸書)에서 해서(楷書)로 옮겨가는 과정의 율동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어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비문에는 신라의 영토 확장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인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장차 신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신라의 형벌 및 행정에 대한 법규인 율령제도 발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노역체제, 재산 분배에 관한 국법이 진흥왕 초반에 마련된 것과 적성 지방에 국한된 관습을 법으로 일반화하고 있는 사실 등이 그러하다. 비문 첫머리에 언급된 10인의 고관의 관등과『삼국사기』의 내용을 견주어 살펴볼 때, 비의 건립은 진흥왕 6∼11년(545∼550) 사이였을 것으로 보인다.북방공략의 전략적 요충지인 적성지역에 이 비를 세웠다는 것은 새 영토에 대한 확인과 함께 새로 복속된 고구려인들을 흡수하려는 국가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비록 순수비(巡狩碑:왕이 직접 순행하며 민정을 살핀 기념으로 세우는 비)는 아니지만, 순수비의 정신을 담고 있는 척경비(拓境碑: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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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 단양 신라 적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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