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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부 동헌은 부산 동래구 시장 골목사이로 남아 있는 조선 시대 관청 건물이다. 동래부는 조선시대 이 일대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으며, 사방이 성으로 둘러쌓여 있다. 지금도 동래부 동헌 주위로 기차역이 있고, 동래부사 송상현을 모신 충렬사가 있다. 왠만한 도시에는 동헌이 다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고, 동래부 동헌이 그 복잡한 동래시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동헌은 일명 아헌(衙軒)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수령이 직접 공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이청(吏廳), 무청(武廳), 향청(鄕廳) 등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동래부는 정3품 당상관(堂上官)이 부사(府使)로 임명되고, 국방 및 대일외교상 중요시되었던 곳이므로 관아시설도 위용을 갖출 필요가 있어 다른 고을에 비해 규모가 컸다. 아헌인 충신당에는 그 부속건물로 좌우의 동익랑(東翼廊), 서익랑(西翼廊)과 대문, 외대문인 독진대아문(獨鎭大衙門), 그 바깥 문루인 망미루가 있었다. 그러나 서익랑은 파괴·철거되었으며, 망미루와 독진대아문은 지금의 금강공원 입구와 금강공원 안으로 옮겨 세웠다. 충신당만은 본래의 위치에 외롭게 보존되어 있으나, 부지(敷地)는 축소되었고, 원래 떨어져 있었던 동익랑이 충신당에 너무 가까이 이건되어 갑갑한 느낌을 준다.
현재의 동헌 건물은 1636년(인조 14) 동래부사 정양필(鄭良弼)이 창건하여 1711년(숙종 37) 부사 이정신(李正臣)이 충신당이라는 편액(扁額)을 붙인 뒤로 충신당이라 일컬어졌는데, 조선시대 말까지 동래부와 동래관찰사의 아헌으로 사용되었다.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인 충신당은 우리나라 고유의 목조기와 단층집으로 원래는 방과 마루가 함께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건물 앞면에는 각 칸마다 분합문(分閤門)이 부착되어 있지만 이 역시 원래 모습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동헌은 일제시기부터 관청 건물로 사용되면서 벽면, 평면구조, 천장, 마루 등이 많이 개조된 데다 보수를 거치면서 목재 등의 재료가 대부분 교체되어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고 있으나, 부산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단일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크면서 유일한 동헌이며,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관아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동래구청>

동래부 동헌입니다. 재래시장인 동래시장 한 가운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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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성 성벽에서 바라본 동래부의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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