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불교건축(불전_요사)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배흘림 기둥과 주심포 양식의 대표적 목조건축물

younghwan 2009. 10. 21. 13:54
반응형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알려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불전으로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는 불전이다.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신 불전을 보통 극락전 또는 무량수전이라 하는데 부석사에서는 무량수전이라 명칭하고 있다. 부석사의 또 다른 특징으로 '무량수전'이라는 편액이 중국식으로 적혀있고, 뒷편 조사당의 편액또한 글씨를 세로로 쓰는 중국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부석사 편액을 고려 공민왕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공민왕은 원나라에 자란 사람으로써 원나라 양식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그 역사가 오래되어서 유명한 점도 있지만, 건축사적으로도 고려시대 주심포계 목조건축물을 가장 잘 구현한 건축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 전경. 무량수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가 상당히 큰 목조건축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배흘림 기둥을 사용한 주심포계 건물로 상당히 간결하고 안정감 있게 보이는 건축물이다.

부석사 마지막 축대인 안양문을 통과하면 눈앞에 보이는 장면. 정면에 국보로 지정된 석등이 보이고, 그 뒷편으로 무량수전이 보인다.

부석사 무량수전 편액. 목재로 만든 편액이지만 중국 건물들의 편액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목조건축물의 양식인 주심포계 양식을 사용해서 건물이 아주 간결하고 안정감 있어 보인다. 주심포계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양식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대표하는 건축양식인 배흘림 기둥. 가운데는 굵고 아래와 위는 가늘게 만들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문창살에는 장식을 하지 않아 건물 전체가 안정감있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팔작지붕. 흔히 볼 수 있는 조선시대 팔작지붕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이중으로 된 서까래를 사용함으로써 처마가 다른 건축물에 비해서 넓다.

부석사 무량수전 내부를 관람하는 사람들.

부석사 무량수전 뒷쪽편

부석사 조사당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무량수전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