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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진주 촉석루, 남강의 풍치를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누각

younghwan 2013. 7. 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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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성 내에는 남강 바위 벼랑 위헤 장엄하게 솟아 있는 촉서루는 영남제일의 누각으로 아름다운 남강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경상우병영 주둔지로 경남지역에서 호남지역으로 통하는 교통로를 지키기 위해 축성된 진주성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장대역할을 하는 촉석루는 규모로 보아서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 삼척 죽서루 등과 함께 조선시대 관아에서 운영하는 대표적인 누각이라 할 수 있다.

 이 누각은 원래 장대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규모를 크게 하여 경상우병마절도사나 진주목사가 지역내 유력인사들이나 중앙에서 방문한 손님들을 위해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진주는 군사조직인 경상우병영과 행정조직인 진주목이 별도로 설치된 곳으로 관아의 규모가 상당히 컸던 지방으로 평양과 함께 기생들이 유명했으며, 기생들에 의해 공연되었던 진주검무가 지금까지 남아 있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로 이곳 촉석루에서 펼쳐진 연회에서 공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촉석루는 국보로 지정되었던 원래 건물이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렸으며, 1960년데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라 한다. 이런 까닭에 진주성을 찾은 사람들이 마음껏 올라가서 남강을 감상하면서 쉴수 있어서 좋은 곳이기도 하다. 촉석루 아래 남강에는 논개가 빠진 의암 바위가 있다.

촉석루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으로 영남 제일의 명승으로 꼽힌다. 이곳은 고려 고종 28년(1241) 진주목사 김지대가 창건한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지었다. 전쟁때는 장수의 지휘소로 쓰였고, 평상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명소였다. 촉석루는 강가에 바위가 우뚝우뚝 솟아 있다고 하는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일명 남장대 또는 장원루라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10년(1618) 병사 남이홍이 전보다 웅장한 건물로 고쳐 지어 1948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950년에 한국전쟁으로 불탔다. 지금의 건물은 1960년에 진주고적보존회가 시민의 성금으로 고쳐 지은 것으로 건물의 구조는 정면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형태로 되어 있다. 예로부터 남으로는 진주 촉석루, 북으로는 평양 부벽루라 할 만큼 풍광이 아름다워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글과 그림이 전해져 오고 있다. 현재 촉석루에는 하륜의 '촉석루기'를 비롯한 많은 글이 걸려 있다. <출처:진주시청>


진주 남강이 내려다 보이는 벼랑 위에 세워진 촉석루. 그 아래로 의기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빠졌던 의암바위가 있다.


촉석루는 경상우병영이 있었던 진주성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남장대 역할을 하는 누각이지만, 관아에서 연회를 베풀기 위해 그 규모를 크게 하였다.


촉석루 출입문. 그 앞에 관광객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촉석루는 원래 진주성내 군사를 지휘하던 남장대였지만, 임진왜란 이후 경상우병영이나 진주목에서 손님을 접대할 수 있는 누각으로 크게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것을 1960년대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상당히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촉석루 내부. '남장대'라 적힌 현판이 내부에 걸려 있다.


촉석루 내부에 걸린 현판


촉석루 내부에는 하륜이 쓴 '촉석루기'를 비롯하여 많은 시인묵객들이 쓴 글들이 걸려 있다.


촉석루 내부


촉석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강


촉석루 서쪽편 남강 상류방향


촉석루 서쪽편 남강변 벼랑위에 쌓은 성벽


촉석루 아래 진주성 여장


촉석루 옆에는 의기 논개를 모신 사당이 있다.


촉석루 현판


촉석루 아래 심어진 작은 고목


의암바위로 내려가는 길에서 본 촉석루


뒷편 언덕에서 내려다 본 촉석루


2006년 촉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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