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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광장 사거리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교보문고 바로 옆에 있는 비석과 비전(碑殿)이다. 서울과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교보문과와 함께 있는 이 건물을 보지 않은 사람을 거의 없을 것이지만, 워낙 대로변에 있고, 예전에는 광화문 사거리에는 건널목이 없었던 까닭에 멀리서 눈으로 보기만 했지,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여기에 있는 비석은 고종이 즉위 4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정식명칭은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라고 하며, 이 비석을 보호하고 있는 건물을 비전(碑殿)이라고 명칭하며 궁궐 건물과 같은 위상을 갖는다. 이 비전은 조선시대 마지막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궁궐 건물의 격식에 맞게 돌난간 등 여러 가지 상징물들로 장식하고 있다.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와 비전(碑殿). 교보문고 옆 대로변로 홀로 외롭게 서 있는 문화재이다.

기념비전 편액

비전 내부에 비석을 가까이 가서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비전의 출입문은 돌기둥에 무재개돌을 얹어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적어 놓고 있다.

출입문 돌기둥에 올려진 동물상

건물은 궁궐 건물처럼 기단위에 세워졌으며, 기단 주위에는 돌난간으로 둘러져 있다.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돌난간

돌난간 기둥과 기둥 위에 세워진 동물상

비석이 있는 기단을 오르는 계단



고종(재위 1863∼1907)이 왕이 된지 40주년과 그의 나이 51세에 기로소에 들어 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비를 보호하는 비전(碑殿)안에 있다. 또한 이 비석에는 고종이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기로소(耆老所)는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로, 고려 때의 기영회를 계승한 관제이다. 조선 태조가 60세 되던 해에 친히 기영회에 들어갔는데, 이후 왕들이 오래살지 못해 기로소에 들어가는 이가 없자, 숙종과 영조 등이 60세를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미리 앞당겨 들어간 것을 본받아 고종은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51세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석은 귀부, 비몸, 이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몸 앞면에는 황태자인 순종의 글씨가 있으며, 비문은 윤용선이 짓고 민병석이 썼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정자(停子)형 건물로 건물 기단 둘레에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건물의 남쪽에 설치한 문은 돌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았는데, 문의 가운데칸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어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 문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전은 20세기초 전통적인 건축양식의 틀이 해체되기 직전에 세워진 건물로 당시 이러한 유형의 건물 중 대단히 아름다운 건물이며, 이 시기에 세워진 덕수궁의 다른 여러 건물과 함께 중요한 연구자료가 된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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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2.3.4가동 |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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