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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 무위사는 월출산 남쪽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크지 않은 사찰로 남해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으로 남해보살로도 불리는 관음보살을 위해 원효대사가 지은 사찰로 알려져 있다. 무위사는 국보로 지정된 조선초기 건축물인 극락전을 잘 알려져 있는 사찰로 극락전 건물을 보면 무위사가 추구했던 단아함, 간결함, 절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무위사 극락전. 조선 세종때 지은 건물로 앞면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조선초기 건축물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직선적이고 간결하게 만들어졌다.


측면에서 본 무위사 극락전. 사람 인(人)자 모양이 지붕을 하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과 비슷한 모양새이지만 건물전체적으로는 본당으로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전기에 유행한 주심포계 형식의 공포이다. 주심포계란 공포가 기둥주위에만 설치된 것으로 간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무위사 극락전 편액.


문살에 문양을 새기지 않아서 간결해 보인다.



여러방향에서 본 무위사 극락전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보존각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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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 무위사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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