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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해남 고산윤선도 유적

younghwan 2010. 9. 1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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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고산 윤선도 선생 고택인 녹우당이 있는 해남읍 연동리 일대른 고산 윤선도 유적지라 하며, 윤선도 선생과 자화상으로 유명한 그의 증손자이자,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인 공재 윤두서 선생이 살았던 녹우당과 사당, 재실격인 고산의 고
조부이자 이 곳 해남따에 처음으로 자리잡은 어초은 윤효정을 모신 추원당과 사당, 그리고 인공적으로 정원을 조서성한 비자나무숲 등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옛성의 연못터에 만든 연못이 있고 조금 걸어서 올라가면 고산 윤선도 선생의 고택이 녹우단과 그 옆에 수령이 꽤 있어보이는 은행나무가 있다. 이 곳에 터를 잡은 해남 윤씨는 조선후기 장자 상속 관습을 먼저 실천하여 큰 부를 이룬 집안으로 윤두서 자화상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전시하는 유물전시관이 녹우단 동쪽편에 있지만, 지금은 큰 유물관을 마을 입구에 새로 신축하고 있다.


해남 고산 유적지. 중앙에 수령 수백년된 은행나무가 있고 왼쪽에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이 오른쪽편에는 비자나무숲으로 올라가는 길과 유물전시관이 있다.

마을 입구에 고산유적지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마을 입구의 연못. 이 곳에 있었던 옛 성의 우물터가 아니었을까 한다.

고산 윤선도 고택으로 올라오는 길. 지금 유물전시관을 크게 신축하고 있다.

마을 중앙의 수령 수백년된 은행나무

해남윤씨 가문이 소장한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유물전시관. 국보인 윤두서 자화상을 전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진품은 창고에 있고 도난을 우려하여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고산 윤선도 선생 고택인 녹우당

고택 뒷편의 사당과 비자나무숲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

길거리에 심어진 나무.

멀리서 본 고산유적지.

고산 윤선도가 54세때인 인조 18년(1640)에 머무르며 『금쇄동기』(보물 제482-2호)를 비롯한 여러 문헌들을 집필한 곳인 금쇄동과 금쇄동 안에 위치한 현산고성이다. 윤선도는 8살되던 해에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어 해남으로 내려가 살았다. 20세에 승보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1616년 성균관유생으로서 집권세력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함경도로 유배되었다. 벼슬을 버리고 내려온 후에는 조상이 물려준 엄청난 재산으로 정치와는 관계없이 보길도의 부용동과 새로 찾은 금쇄동에 여러 정자와 각을 지어놓고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금쇄동은 윤선도가 원림(園林)을 조성한 고성(固城)안과 『금쇄동기』에서 명명한 22개의 지명 등이 있으며, 윤선도가 문학적 영감을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척한 문학산책로로서 건물지와 연못지의 유구가 남아 있고, 금쇄동내에 위치한 현산고성(懸山固城)은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동문, 서문, 북문 등 3곳의 문지, 수구의 성곽시설과 망루지, 건물지, 제방 등의 성내시설이 남아 있다 이곳은 고산 윤선도의 시문학 창작의 산실로서 국문학상의 학술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옛성이 잘 남아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큰 유적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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