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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화성행궁] 장용외영 군사들이 숙식하던 남군영과 서리 사무실인 서리청

younghwan 2010. 3. 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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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행궁은 국왕 행차시 머무는 행궁과 화성유수가 근무하던 화성유수부 관청, 그리고 정조의 친위부대라 할 수 있는 장용영 군사들이 머물던 군영의 역할을 같이 하던 곳이다. 수원화성에는 장용외용 군사들이 머물렀던 곳이라 하며 행궁 출입문인 신풍문 좌.우로는 장용영 군사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기병들로 구성된 친군위가 숙식하던 남.북군영이 자리잡고 있다. 이 군영들을 보면 국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정조대왕의 장용영에 대한 의중을 엿볼 수 있다. 남군영과 외정리소 사이에는 화성유수에 근무하던 말단 관리들의 사무실인 비장청과 서리청이 자리잡고 있다.


화성행궁 제일 앞쪽에 위치한 남군영 건물. 앞면 5칸 규모의 건물로 아마도 사무실과 지휘부가 숙직하던 장소로 생각된다. 복원된 건물이지만 당시 화성의궤에 워낙 세밀하게 정리되어 있기때문에 원형과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남군영 건물에는 당시 갑옷들을 배치해 놓고 있다.

남군영 100명의 군사들이 숙직했던 방들이 있는 남군영 행각들

'화성성역의궤'에는 공해(관아)건물로 분류해 놓았다. 장용외영의 친군위(화성의 기병)는 처음 좌.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곳이 남.북군영이다. (화성행궁 전체는 동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방위로 볼때 남쪽과 북쪽방향에 군영이 있다.) 1789년 군영 24칸을 지은데다가, 정조 18년 좌우익랑 21칸을 증축하여 모두 62칸을 증축하여 모두 62칸의 규모를 갖추었다. 1798년 군 장용외영 군영의 일대 개편에 따라 좌.우열은 파하고 1.2.3번의 입번을 정하여 매년 각기 100명씩 양영에 나누어 방어하였다. <출처:수원시청>


화성유수 하급관리들이 근무했던 관청 건물이 서리청. 현재 비장청 건물이 서리청이었나, 비장들에게 밀려났던 것으로 보인다.


서리청 행각과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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