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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 서삼릉의 예릉은 조선이 법규에 의해 조성한 마지막 능으로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이다. 고종과 순종의 경우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었기때문에 실질적으로 예법에 맞게 국가에서 시행한 마지막 왕릉이 되었다.
 
 예릉은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주도로 왕권 강화를 보여 주기 위해 석물과 부속 건축물을 웅장하게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속건물로는 정자각과 비각이 남아 있고, 제례를 준비하던 부속건물인 수라방은 없어지고 수복방은 지금은 초석만 남아 있다. 조선 왕릉 상당수가 농협을 비롯한 농수산부에 산하 기관에서 접수해서 그런지 주변에 아름다운 길과 목장풍경으로 유명한 원당종마목장과 농협대학을 비롯한 유사 기관들이 모여있다.



조선 25대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인 예릉 전경. 홍살문, 정자각, 비각, 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종대 조성한 능으로 격식과 권위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왕릉이라고 한다.


예릉 입구의 홍살문을 지다면 정자각으로 향하는 참도가 놓여져 있고, 홍살문 바로 옆에는 판위가 있다.



예릉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향.전이 공간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정자각. 이 또한 조선왕실에서 주관하여 만든 마지막 정자각이라 할 수 있다.



예릉 정자각 월대, 계단


정자각 내부는 텅 비어 있다.


예릉은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조성되어 있다.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능침공간에는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게되어 있다.


봉분 앞 석물들. 섬세하게 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철종의 생애와 업적을 적어 놓은 비석과 비각


능지기가 머물던 수복방은 초석만 남아 있다.



예릉은 조선 25대 임금 철종과 비 철인왕후의 능이다. 조선시대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국조상례보편』에 의거한 상설제도로서는 마지막 능이다. 봉분은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이는 쌍릉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능침은 상중하계의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영조의 원릉부터는 중계, 하계의 구분을 두지 않고 문무석인을 같은 단에 배치하였다. 장명등을 중계가 아닌 하계의 끝에 배치한 것는 예릉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철종은 재위 14년 6개월 만인 1863년 33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고종은 철종의 능을 거창하고 웅장하게 꾸며 왕실의 오랜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므로 예릉의 석물과 부속 건축물들은 웅장한 규모로 조영되었다. 평소 부덕이 높았던 철종의 비 철인왕후가 1878년(고종 15)에 42세로 승하하면서 이곳에 함께 안장하여 쌍릉을 이루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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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신동 | 서삼릉 예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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