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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城), 성곽

주제별 목차 2010.09.28 20:41 Posted by younghwan

 우리나라는 고조선을 건국한 이래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나라이지만 습기가 많고 목조건축물을 주로 사용한 관계로 문화유산으로서의 건축물은 많다고 볼 수 없는 나라이다. 이는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반도와 만주, 중국, 일본과의 역학관계에서 많은 전쟁이 있었고, 전쟁에 대비한 억제 및 방어수단으로서 많은 성곽을 건설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성곽은 주로 석축이나 토축을 이용한 관계로 많은 성곽들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 성곽의 건설은 문헌상 고조선의 왕검성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으며, 아마도 마지막을 성곽을 축조한 것은 정조때 수원화성을 비롯하여 전국의 성곽을 정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성곽의 건설 역사가 오래되고 북방유목민을 상대로 생존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기술적으로 발달된 성곽 축성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성곽을 남겨 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곽은 고구려가 북방유목민족을 상대로 정립한 산성을 중심으로 백제계 토성,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도성, 고려말 이후 왜구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한 읍성과 북방유목민의 침입에 대비한 조선후기 강화도에 설치된 해안돈대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 고구려가 정립한 산성의 축조와 산성을 중심으로 한 방어전략이 한반도 방어에 가장 유효한 전략임에도 중국과의 관계등을 고려하여 조선 중기까지 전국의 산성을 방치한 결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큰 고통을 당하였다. 지금 전국적으로 제모습을 갖추고 있는 산성은 대부분 조선후기에 보완을 한 것으로 지금 보아도 침입한 적을 제압하기에 상당히 효율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 조선의 수도 한양 도성(都城)

 조선의 수도 한양에는 사방을 성곽으로 둘러싼 도성이 있다. 도성에는 사대문과 사소문이 있으며 지금까지도 한양도성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다. 한양도성은 오랜세월에 걸쳐서 보완되어 온 성곽으로 시대에 따른 다양한 축성방법을 볼 수 있는 전시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곽의 형태는 평지성과 산성이 혼합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그리 견고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한양도성은 국내 반란세력의 진압(인조반정 등 실패한 경우가 많지만...)에만 유효하게 사용될 수 있었고 외국세력의 침입에는 무용지물에 가까운 형식적인 성곽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선후기에는 남한산성, 북한산성, 강화도가 한양도성의 방어전략에 중심이 되어왔다.

 

숭례문, 한양도성의 남대문
 

한양도성 남산 성벽길
 

장충동
 

광희문, 한양도성 남소문
 

이간수문과 주위 성벽의 흔적
 청계천 수문  


흥인지문, 한양도성의 동대문
 

한양도성의 동쪽, 낙산의 성벽
 
혜화문, 한양도성의 동소문
 

성북동 경계가 되는 와룡공원 성벽
 숙정문  북악산 성곽
 

창의문(자하문), 한양도성의 북소문
 인왕산 성곽

 서대문에서 사직동 사이의 성곽길
 

서대문에서 서소문까지 정동길

2.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

 수원화성은 조선후기 영조가 세운 평지성으로 중국의 성곽 축성 기술을 일부 받아들여서 만든 성곽이다. 지역 중심지에 쌓은 성곽으로 많은 방어 전략을 고안해서 만들었고, 공심돈, 옹성, 치, 돈대 등 성곽 방어에 필요한 많은 시설들이 있는 한국 읍성의 모범이 되는 성곽이고, 축성에 관련된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일관성이 있는 성곽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이다. 하지만, 수원화성의 실제 외국세력과의 전쟁시에는 거의 무용지물이 되는 한양도성과 비슷한 성격의 성곽으로 산성전략처럼 실용적이지 못하고 다소 왕권을 과시하는 측면에서 쌓은 성곽이라 할 수 있다.

 

팔달문, 사통팔달 수원화성의 남문 
 

수원화성 남치, 남포루, 팔달산 오르는 성벽길
 

수원화성 서남포사, 서남암문
 

수원화성 서남각루, 용도동치, 용도서치
 

수원화성 서남치, 서포루
 

수원화성 정상 서노대, 서암문
 

수원화성 서장대
 

수원화성 서포루, 서이치

수원화성 서일치, 서북각루
 
 

화서문, 수원화성 서문
 

수원화성 서북공심돈
 

수원화성 북포루, 북서포루
 

수원화성 장안문을 지키는 북서적대, 북동적대
 

장안문, 수원화성 북문
 

수원화성 북동치, 북동포루
 

수원화성 용연
 

화홍문, 수원화성 북수문
 

방화수류정이라 불리는 수원화성 동북각루, 북암문
 

각건대라 불린 동북포루와 동암문
 

연무대라 불린 수원화성 동장대
 

수원화성 동북공심돈, 동북노대
 

창룡문, 수원화성 동문
 

수원화성 동일포루와 동일치
 

수원화성 동포루, 동이치
 

수원화성 봉돈, 봉수대와 돈대의 기능이 함께 있는
 

수원화성 동포루와 동삼치
 

수원화성 동남각루와 남수문터
 
       
       
       

3. 삼국시대 고구려 산성

 고구려는 일본, 중국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성곽으로 산성전략을 정립하였다. 산성에 산봉우리나 계곡을 중심으로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성곽을 쌓았으며, 산성안에는 적당한 식량을 비축해 놓고 적과 전쟁시에는 소수의 정예병력만 산성에 주둔하여 적을 제압하고, 일반 주민들은 적에게 유용한 식량등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피신한다는 기본 전략을 정립하였다. 이 전략은 고구려, 통일신라, 고려시대까지 북방민족이 세운 국가인 수.당.요.금.원 등과의 투쟁에서 상당히 효과를 보았으며, 임진왜란 후기에 일본을 상대로도 상당히 효과를 보았던 전략이다. 지금도 고구려 산성은 삼국의 국경선이었던 남한강, 임진강변에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성곽을 축성하는 기술이 상당히 뛰어났고,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주 장미산성
 

단양 온달산성
 

서울 아차산성
 


강화 삼랑성(정족산성)


 연천 호로고루

 연천당포성, 임진강 나루를 지키던 고구려 산성
   
       
       



4. 삼국시대 백제 토성

 백제는 그 본류가 고구려이지만 이상하게도 토성을 많이 축성하였다. 지금도 서울에 남아 있는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을 보면 토성의 축성기술이 상당히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백제는 해상세력의 성격이 강한지 산성보다는 강주변에 평지성 형태로 토성을 많이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남쪽지역에는 백제계 토성을 많이 볼 수 없고, 주로 고구려와 대치한 국경선이나, 수도주변에서 백제 토성을 볼 수 있다. 아마도 백제 토성은 후에 읍성으로 변한 경우가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나주 자미산성
 

서울 몽촌토성
 

서울 풍납토성
 

용인 처인성, 대몽항쟁의 현장
 

고양 행주산성
 

파주 육계토성
 


부여 부소산성
 

부여 성흥산성
       
       


5. 신라의 성곽

 신라의 성곽은 고구려 산성전략을 그대로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으로 보이며, 보은 삼년산성처럼 그 축성기술이 상당히 뛰어나고 성곽을 견고하게 쌓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성곽은 주로 국경지역인 남한강 주변과 문경의 고모산성이나 합천의 대야성처럼 지역 거점에 산성을 쌓아 두고 있다. 수도 경주의 궁성이 반월성도 산성의 형태를 하고 있는 성곽이다.
 
 

여주 파사산성, 신라 파사왕이 쌓았다는 산성
 

단양 적성산성, 죽령을 지키던 신라 산성
 


보은 삼년산성
 

경주 월성 반월성
 

파주 칠중성, 나당전쟁 현장
     
       
       


6. 서산 해미읍성, 대표적인 읍성

 서산 해미읍성은 대표적읍성으로 읍성을 쌓은 이유와 그 성격을 가장 적절하게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서산 해미읍성은 고려말, 조선초 왜구의 침입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을 때 이를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 조선 태종때부터 쌓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주로 해안가에서 수십 km정도 떨어진 곳에 배후에 산을 두고 있는 위치에 읍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성곽은 견고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왜구와 같은 소규모 병력의 기습을 적절히 막을 수 있는 수준의 방어시설을 두고 있으며, 행정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해미읍성 진남문
 

해미읍성 돈대, 치, 성벽
 

해미읍성 동문, 서문
 

호서좌영 객사
 

호서좌영 동헌
 

해미읍성 내아
 

해미읍성 옥사, 회화나무
 

해미읍성 마을

7. 한국의 읍성

 전국적으로 읍성은 관찰사가 근무한던 감영이나 목사가 근무하던 규모가 큰 지역이나,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지역의 중심지에 설치하고 있다. 기존에 산성과 비슷한 형태의 읍성을 활용한 동래읍성, 진주성, 공산성, 고창읍성 같은 읍성이 있는 반면, 낙안읍성이나 해미읍성처럼 전형적인 평지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도 많다. 전국적으로 전략적 요충이 되는 해안지역과 가까운 경남.전남.전북.충남서해안 지역에 읍성이 많이 분포해 있다.

 

공주 공산성, 백제 두번째 수도
 

강진 병영성지, 네덜란드인 하멜이 머물렀던 성
 

부산 동래읍성
 

진주 진주성
 


순천 낙안읍성, 한국을 대표하는 읍성
 

나주 읍성 남고문
 

나주읍성 동점문
 


전주읍성 풍남문
 


고창읍성
 


강화 석수문
 

강화 해안가 벽돌로 쌓은 전성
 

평택 농성
       
       
       
       
       
       
       

8. 남한산성, 대표적인 산성

 남한산성을 한국을 대표하는 산성으로 서울 남쪽편 한강 이남에 위치하고 있는 천혜의 요새이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산성이라고 한다. 지금의 성곽은 병자호란 당시의 성곽은 아니고 호란이후에 보강한 것이라 하며, 병자호란 당시에도 산성이 함락된 것이 아니라 식량부족 등의 이유로 청나라에 항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남한산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병자호란 당시 충분한 식량을 비축하고, 국왕을 비롯한 정예병력 위주로 청나라에 항쟁했더라면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는 망신과 불운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리 뛰어나고 천혜의 방어시설이 있더라도 이를 운용하는 세력이 무능하여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남문에서 영춘정까지
 

영춘정에서 수어장대까지
 

수어장대 서암문
 

수어장대
 

수어장대에서 서문까지
 

서문(우익문), 한양도성과 연결된 성문
 

서문에서 북문까지
 

북문(전승문)
       



9. 고려/조선시대 산성

 고려시대 이후에는 우리나라 방어전략이 읍성 위주로 흘러가면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같은 외부세력과의 전면전에서 많은 취약점을 보이게
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조선후기에 다시 산성이 각광을  받으면서 전국적으로 튼튼한 석축산성이 개보수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산성으로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강화산성, 청주 상당산성 등을 들 수 있다.

 


청주 상당산성
 


서울 북한산성
 


강화산성, 대몽항쟁의 현장 (고려성)
 

오산 독산성, 세마대지
 

진도 용장산성
     
       
       
       
       
       
       
       
       


9. 강화 해안 돈대 / 해안 진지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크게 패한 이후 조선은 청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강화도를 요새화하게 되며, 유수부를 설치하여 그 위상을 크게 높였다. 강화도에는 강화산성을 중심으로 성곽을 크게 보충하고, 섬바깥 해안에는 돈대와 포대를 많이 설치하여 선박을 통한 침입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강화도에서 대몽항쟁에서 크게 유용했던 천연 방어시설인 갯벌이 식량 자급을 목적으로 한 간척사업으로 줄어들어서 실제로 구한말 병인양요나 신미양요때 방어시설이 큰 구실을 하지 못했다. 다만 전략적으로 크게 중시했기때문에 일부나마 서양세력의 침입을 제어할 수 있었다.

 

초지진, 신미양요 격전장
 

강화해안 남장포대
 

강화해안 덕진진
 

강화해안 덕진돈대
 

손돌목 돈대
 

광성보, 신미양요 격전장
 

광성포대
 

용두돈대, 손돌목을 지키는 돈대
 

광성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좌강돈대
 

용진진
 

갑곶돈대
 

김포 덕포진 포대
 
       
       
       
 

인천 월미돈대
     


10. 왜성/기타

 우리나라 남해안에는 임진왜란의 흔적으로 당시 왜군이 쌓았던 왜성들이 일부남아 있다. 이들 왜성은 그 축조방법에 있어서 우리나라 성곽축성기술과는 다른 형태를 보이며 일본의 성곽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100여년에 걸친 내전을 통해서 단련되어서 그런지 단기간내에 많은 왜성을 축조해 놓고 있다.

 


순천왜성, 왜장 소서행장이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던 곳
 

진해 웅천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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