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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금성 정문인 천안문을 나와서 잠시 쉬는 틈이 있어 들러본 서쪽편 중산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중국의 사직단이다. 종묘와 사직이라는 유교국가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장소이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사직은 그 곳을 관리하는 주체가 모호해서 그런지 부속시설이 많지 않고 그 규모도 웅장하다고 할 수 없는 시설이다. 다만, 그 중요성으로 인해 위치는 자금성 입구의 서쪽편에 자리잡리고 있어서 접근은 용이하게 되어 있다. 

 이 곳 사직단 부근은 제단의 성격을 가진 장소라서 주변에는 명나라때부터 조성한 수령이 수백년된 향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으며, 사직단의 형태는 사각형의 제단에 사방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 모습이 서울의 사직단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북경의 사직단은 대부분 대리석을 이용해서 출입문과 제단을 만들고 있으며, 그 크기는 서울의 사직단보다 큰 것으로 보인다.
 


땅의 주인과 오곡의 우두머리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


중산공원 입구에서 향나무 숲을 지나면 북경의 사직단을 볼 수 있다.


정사각형 제단의 중앙에 섬돌이 설치되어 있다.


정사각형으로 된 사직단의 제단은 우리나라 사직단에 비해 넓이는 10배 정도의 크기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직단 제단은 3단의 높이로 쌓았으며, 화강석으로 쌓은 우리나라 사직단과는 달리 대리석으로 단을 쌓고 있다.


사직단 사방으로 담을 두르고 있으며, 사방으로 출입문(신문)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사직단의 경우에는 홍살문 형태로 출입문을 만들고 있으나, 중국은 대리석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사직단 뒷편으로는 중산전이라는 전각이 설치되어 있는데 사직단과는 관계없는 시설로 보인다.(?)


사직단 제단 앞에 놓여진 향로. 다른 제향시설에 비해서 많은 상징물을 두지 않은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중산은 현대 중국 건국의 토대를 만든 손문 선생의 호이며, 중산전을 그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서울 경복궁 서쪽편에 위치한 사직단. 한국적인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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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주인인 사(社)와 오곡의 우두머리인 직(稷)의 두 신위(神位)에 제사드리는 곳. 이곳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으므로 사직단이라고 한다. 보통 도성의 서쪽에 위치한다. 사단(社壇)은 동쪽, 직단(稷壇)을 서쪽에 설치한다. 국토와 오곡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 되므로 고대에는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고 보호해주는 데 대한 보답의 의미에서 사직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사직은 왕실의 조상들을 제사 지내는 종묘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시되어, 국가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직단이 설치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인 것으로 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고려 시대에도 991년(성종 10)에 사직을 세웠는데, 1014년에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수축되었다. 조선 왕조가 들어선 1393년(태조 2)에는 한양 천도와 관련된 종묘·사직의 지형도를 만들었다. 그 이듬해에 사직의 터를 잡았는데, 경복궁 서쪽의 인달방(仁達坊)으로 정했다. 1395년 사직단의 축조공사가 시작되어 단의 설치가 완성된 이후 담장을 둘렀으며, 담장 안에는 신실(神室)과 신문(神門)을 세웠다. 1474년에 간행된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사직단은 정4각형의 평면으로서 한 변의 길이는 2장 5척 즉 25척, 높이는 3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단의 사방 중앙에는 3층의 섬돌이 설치되어 있으며, 사단과 직단 사이의 간격은 5척으로 되어 있다. <출처:브리태니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