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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황시 서북방면으로 약 1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옥문관을 한무제때 흉노와 한나라간 투쟁의 중심지로써 한나라때 쌓은 만리장성이 있었던 곳이다. 옥문관은 투루판을 지나 천산산맥을 따라 중앙아시아로 뻗는 오아시스 북로의 첫번째 관문으로 이 옥문관을 벗어나면 중국땅을 떠나서 서역으로 나가는 것이자,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이 관문 바깥이 세상밖이라 여겼던 곳이이기도 하다.

 옥문관은 '옥이 들어오는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옥의 산지인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에 위치한 허텐이라고 곳에서 중국의 은.주 시대부터 옥을 수입해 왔다고 한다. 이는 중국이 서역과 무역을 하고 서역을 경영하고자 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한무제때는 이 곳에 '옥문관도위'를 설치하고 흉노를 공략하기 위해서 수차례 출병하였으며,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 역시 아마도 이 곳을 거쳐서 서역으로 떠났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고사 중에 국경밖을 말하는 '변경', 국경밖으로 출정하는 '출새' 등 국경과 관련된 많은 고사성어와 단어들이 이 곳에서 생겼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닌듯 하며, 이 곳 옥문관과 주위의 사막을 보니 그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닫는 힘든 여정이 느껴지는 자연적인 특징을 잘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곳을 나서면 죽음의 사막이라는 '백룡퇴', 서유기에 등장하는 투루판까지의 힘든 경로인 '유사하'등이 펼쳐진다. 지금도 둔황에서 투루판까지는 기차로 8시간 이상 걸리며, 그 중간에는 정차역 또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만리장성 옥문관. 한나라때 만리장성의 서쪽끝이자, 서역으로 출발하는 관문이 되었던 성문이다. 이 곳의 만리장성은 기후와 지형적 특성에 따라서 갈대와 흙을 섞어서 성벽을 만들어 놓고 있다. 양쪽으로 만리장성이 연결돼어 있었으나, 지금은 성문만 외로이 남아 있다. 현재의 옥문관을 당나라때 지어진 것이라 한다.


만리장성 옥문문관 주위로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말로만 듣던 지평선을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이 넓은 사막에 만리장성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사막에서는 불어오는 거센 모래바람은 '삭풍'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을 것으로 보인다. 둔황또한 중국의 수도였던 장안(시안)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데 아마도 이 곳에 주둔했던 당시의 중국 병사들에게는 변경이라는 의미를 몸서리 치도록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곳 사막에서 흉노 기마대가 갑자가 몰려오는 것을 상상해 보면,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이며 만리장성을 지키는 병사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들 것 같다.


옥문관 북문. 서북쪽 오아시스로의 북로로 나가는 출입문이다. 지금의 옥문관은 당나라때 만들어진 것으로 장성의 관문치고는 그 크기가 크지 않다고 한다.


옥문문 서문은 서남쪽으로 뻗은 남문으로 출발하는 출입문이다.


한대에 쌓은 이 곳의 만리장성은 진흙과 주변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갈대를 섞어서 만들었는데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이라서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성벽이 남아 있다.


옥문관 주변에 보이는 봉수대 자리



이 곳 사막은 명사산 모래언덕과는 달리 모래는 거의 없고 메마른 흙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만리장성 옥문관을 쌓았을 당시에는 이 곳 옥문관 주변에는 오아시스가 있었고 지금보다 초목이 많았었다고 한다. 이 곳이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사람이 많이 살지 못하게 됨에 따라서 중국 입장에서는 서역의 이민족 경영의 중용성이 크게 낮아져서 몽골 초원과 만주지역 이민족의 위협이 크지는 북경으로 수도를 이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관광사진이나 책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옥문관 출입문


여러 방향에서 본 옥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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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문관(玉門關)은 만리장성의 서쪽의 끝이다. 둔황시의 서북쪽으로 9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옥문관은 실크로드의 중요한 관문 역할을 했던 곳이다. 남쪽으로는 양관(阳关)이 북쪽으로는 옥문관(玉門關])이 변경을 지키기 위해 서 있어 서역으로 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나라와 당나라 두 나라에 의해 건립되었다. 현재의 옥문관은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유적지이다. 이곳은 그 당시의 많은 시인묵객들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서역은 중국에서 한대(漢代) 이후로 위먼관[玉門關]과 양관(陽關) 서쪽의 여러 나라들을 일컫던 역사적 용어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파미르 고원 동쪽 지역만을 가리키지만, 넓은 뜻으로는 이 지역 외에도 아시아 중·서부와 인도 반도, 유럽 동부와 아프리카 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까지 포괄한다. 한의 무제(武帝)는 장건(張蹇)을 파견하여 처음으로 서역을 개척했고, 선제(宣帝)는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를 설치했다. 당대(唐代)에는 서역에 안서(安西)·북정(北庭)의 2개 도호부를 설치했다. 이후로는 중원(中原)과 좁은 의미에서의 서역이 정치·경제·문화 등 각 방면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해운교통이 발달하기 전에 서역은 동서 교통의 주요통로였다. 19세기말 이후로는 서역이라는 명칭을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출처:브리태니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