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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 무제때 장건이 개척한 실크로드 관문인 옥문관 근처에 남아 있는 한나라 만리장성이다. 새원(塞垣)이라고 불린 이 곳의 한나라 만리장성은 지금으로 2,100년 전에 지은 장성으로 만리장성의 원형을 잘 보여 주는 곳이다. 만리장성 성곽은 지역에 따라서 다른 형태로 쌓고 있는데, 이 곳 둔황지역은 주변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갈대와 모래자갈을 섞어서 쌓고 있는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지역의 특징에 따라서 오늘날까지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남겨 놓고 있다.

 비록 남아 있는 모습은 명대에 쌓은 북경 주변의 만리장성에 비해서 보잘 것 없지만, 당나라 때까지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곳의 만리장성은 한무제때 명장 곽거병,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 후한때 명장 반초, 고구려인 후손으로 서역을 경영하였던 고선지 장군까지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이 곳을 거쳐갔었다고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의미가 너무나도 큰 곳이다.

 이 곳 장성너머로 물밀듯이 밀려오는 흉노를 비롯한 서역 유목민 기마대, 서역 출병을 준비하던 수많은 중국 병사들이 넓은 초원가 사막을 달리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아직도 그 원형이 잘 남아 있는 한나라 때 쌓은 만리장성.


옥문관 주변의 사막지역에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한나라 장성(한장성)이 여러 곳 남아 있다고 한다. 옥문관 앞쪽으로는 로프노로 호수로 흘러가는 지금은 말라버린 소륵하가 있다고 하면, 사방이 사막으로 되어 있는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물이 부족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둔황지역의 만리장성 축조방법은 오아시스 부근에서 자라는 갈대와 모래자갈을 1:4의 비율로 섞어 성곽을 쌓고 햇볕에 말렸다고 한다. 이 지역 건축물들도 대부분 이런 형태로 짓고 있는데, 상당히 단단하고 견고하다.


만리장성을 쌓을 때 사용된 근처 오아시스의 갈대들


성벽 중간에는 봉수대(?)나 돈대처럼 보이는 건물이 남아 있다. 주변에 비해서 성벽이 높아 보인다.


끝없이 이어진 사막을 따라 한나라 만리장성(한장성)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만리장성 바깥쪽 북쪽 방면. 흉노를 비롯한 서역의 유목민들이 쳐들어 오는 길이다. 이 만리장성 바깥쪽으로는 소륵하가 흐르고 있는데, 옛날에는 초지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곳 사막은 메마른 흙과 자갈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과는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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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성 漢長城'은 2,100여 년 전인 기원전 2세기 초 축조한 것으로서 명대의 산해관에서 가욕관 까지 개축된 만리장성보다 무려 1,500여년 앞서 지은 것이다. 그래서 이 한장성을 만리장성의 원형이라 일컫는다. 진대에는 장성, 한대에는 새원, 명대에는 변장 등으로 다르게 불렸거니와 축조방법도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둔황 동쪽의 안서부터 서쪽의 로프노르 호수 부근까지 150여 km 에 이르는 '둔황장성'의 경우는 당시 서호 일대에 무성한 각종 수초와 모래 자갈을 1대4 비율로 엇바구어 가면서 쌓는 방법을 취했다. 이 한장성의 기단 너비는 3m,  높이는 2.6m나 된다. 2천년을 넘긴 유접답지 않게 아직도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출처: 실크로드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