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성곽(산성_읍성)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병자호란 최대의 패배가 있었던 곳

younghwan 2012. 4. 26. 12:16
반응형

 남한산성 북문에 해당하는 전승문이다. 이 성문은 원래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부터 있었던 성문은 아니고 인조때 신축한 성문이라 한다. 이 곳의 이름은 '전승문'이라고 부르는데 이 곳이 병자호란 당시 가장 큰 패전이 있었던 장소라서 그 사실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붙혔다고 한다.

 남한산성에서 북문은 서울 강동지역 한강유역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북문 아래쪽은 통일신라시대 한강유역을 관리하는 주요 방어시설인 이성산성과 고려초 크게 세력을 떨쳤던 광주지역 호족의 근거지인 하남 춘궁동과 연결된다. 정문격인 서문과는 달리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과 비슷한 규모로 지었으며, 이 쪽 방면으로는 계곡을 통해서 접근하기는 쉽지만, 계곡과 주변 지역이 경사가 있는 편으로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지형을 하고 있다.



남한산성 북문인 전성문. 출입문의 홍예도 마차가 지나갈 정도로 크고 넓다. 아마도 북문으로 적의 위협이 많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이렇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문루는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읍성의 문루와 비슷한 모양이다.


남한산성 내부에서 본 북문과 문루


성문 내부



북문 바깥쪽에서 본 성문. 문루에 '전승문'이라고 적힌 현판을 볼 수 있다.


출입문인 홍예와 주변 성벽은 상당히 큰 돌로 석축을 쌓고 있다.


성문 좌.우 성벽


광주지역 중심지였던 하남 춘궁동에서 남한산성 북문으로 올라오는 산길. 도로는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게 만들어 놓고 있다.


남한산성 북문 문루


문루에서 보이는 남한산성 내부


북문 동쪽편으로는 성문을 엄호할 수 있는 치(雉)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로 성벽을 바깥쪽으로 돌출되게 쌓고 있으며, 그 위에는 각종 화포 등을 배치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을 만들어 놓고 있다.


북문 동쪽편 넓은 공간 내부


남한산성 북문 좌.우의 성벽


남한산성 내부에서 북문으로 들어가는 길




전승문(북문)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고도 하였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 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하고 말았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성문을 개축하고 이름을 붙여 전승문이라 한 것은 그 대의 패전을 잊지 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산성 내에 동문, 남눈, 수구문 총 3개의 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문은 인조 2년에 신축된 성문이라고 생각된다. <출처:남한산성>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