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전해진 불교의 전파경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교하고성 대불사 금당터이다. 교하고성은 차사전국의 수도였으며, 후대에 한족인 국씨가 고창국을 세우기까지 투루판지역의 경제와 물류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이다. 국씨의 고창국이 세워지기 전까지인 후한에서 남북조시대까지는 서역에서 전래된 불교과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지며 그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로써 이 곳 교하고성은 불교국가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며, 그 후에 세워진 고창국 또한 불교국가라 할 수 있다.

 이 곳 교하고성의 중심이 되는 불교사원인 대불사를 보면 그 가람배치의 모습이 고창고성의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것 같고, 고창고성 대불사는 인도의 불교사원과 비슷한 양식을 취했다고 하면, 이 곳 교하고성의 대불사는 삼국시대의 황룡사나 일본 나라의 동대사의 가람배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사찰 안쪽에 중심이 되는 금당이 있고, 금당 앞 경내는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간에는 두개의 탑이 있었던 자리가 보인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황룡사 목탑과 같은 기능을 하는 대탑이 사찰 바깥쪽에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곳 대불사의 금당 내부에는 불상이 모셔진 여러개의 감실이 있는 탑이 가운데 모셔져 있는 단순한 구도로, 목조 건축물인 우리나라나 일본의 사찰과는 달리 흙벽돌로 탑을 쌓아 놓고 있다. 또한 삼국시대 사찰의 금당은 장륙전이라 부르며, 거대한 미륵불상이 내부에 있는데, 이는 일본 동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교하고성 중심부에 위치한 대불사 경내로 들어가면, 중앙에 금당을 배치해 놓고 있어며, 경내는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투루판 지역 건축 특성을 살려서 흙벽돌로 쌓아서 만든 건물이다. 동시대의 우리나라나 일본의 금당인 장륙전과 비슷한 규모이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이 곳 교하고성의 가람배치나 건축양식을 참조하여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목조 건축물로 사찰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황룡사나 미륵사 등 대형 사찰에 있었던 금당의 모습이 가장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일본 나라의 동대사 금당이다. 그 규모나 금당의 배치에 있어서 교하고성의 대불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교하고성을 비롯하여 투루판지역이나 실크로드 상에 있는 여러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불상의 양식으로 대형 불상이 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탑을 쌓고, 그 탑에 감실을 두어 불상을 모시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황룡사나 일본동대사는 이런 형태의 대형 미륵불상을 모시고 있어 금당을 장륙전이라고도 부른다.


대불사 금당을 오르는 계단. 건축양식과 재료는 다르지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금당을 조성하였으며, 계단을 올라서 금당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당을 오르는 계단


출입문은 어떤 모습이었는 지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금당과는 달리 성문처럼 하나의 출입문이 있고, 출입문을 들어서면 불상이 있는 탑이 보인다. 이는 고창고성의 대불사도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정확하게 탑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금당내부에 불상을 모신 탑은 2층의 기단위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일반적인 제단의 성격과 비슷해 보인다.


불상이 모셔진 감실. 불상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감실에 모셔진 불상은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은 것으로 보이며, 불상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다.


흙벽돌로 쌓은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는 이 곳도 최근에 복원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금당 출입문


금당벽면


투루판 교하고성 금당



크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