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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여주 고달사지]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

younghwan 2010. 8. 1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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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고달사지는 남한강 이북지역에 있는 오래된 절터로 규모가 상당히 큰 사찰이 있었던 자리이다. 삼국시대 이래 이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고려초기에 크게 번창했던 사찰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찰이 없어지고 되었지고 석조유물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고달사지를 비롯하여 역사이래로 한반도에서 중요한 내륙수운이었던 남한강변에는 미륵사지, 청룡사지, 법천사지, 거돈사지, 고달사지 등 규모가 상당히 큰 절터가 있는데 대부분 고려말 이후에 사찰은 없어지고 절터만이 남아 있고, 지금은 신륵사를 제외하고는 규모가 있는 사찰이 거의 없다. 그냥 추론해 보면 고려시대에는 사찰들이 많은 토지를 가지고 고리대금업을 하는 등 민심에 반하는 일을 많이 했었는데 고려말과 조선초에 이에 대한 개혁이 일어나면서 산중에 있었던 사찰과는 달이 평지에 있었던 사찰들은 없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은 통일신라 경문왕때 태어나 고려광종 때 입적한 유명한 고승인 원종대사의 사리탑으로 당시에 고달사를 일으킨 석공인 고달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기단 위에 탑신과 지붕돌을 옮긴 신라시대 이래의 전형적인 사리탑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웅장하고 큰편에 속한다. 기단부에는 거북모양 장식을 하고 있으며, 8면으로 이루어진 탑신에는 4개의 문과 사천왕상을 새겨 놓고 있다. 고려초기를 대표하는 부도탑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


이 탑의 기단부는 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단부는 네모난 바닥돌에 연꽃잎을 새겨놓고 있으며 중간에는 거북모양의 장식을 하고 있다.


탑신은 8면으로 되어 있으며, 4개의 면에는 사천왕상이, 4개의 면에는 문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목조건축물의 지붕을 모방해서 만들었으며, 꼭대기에는 지붕돌 모양의 장식을 올려놓고 있다. 보통 지붕돌 위의 장식은 없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 탑은 제대로 보존되어 있다.


탑신에 새겨진 사천왕상


기단부의 용무늬 장식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



넓은 절터 안에 많은 석조 유물들이 흩어져 있는 가운데 탑비와 함께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이 부도탑은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과 지붕돌을 올린 형태로, 전체적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기단부에서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기단부는 네모난 바닥돌에 연꽃잎을 돌려 새겼다. 아래받침돌은 네모난 형태이며, 가운데받침돌 윗부분부터 8각의 평면이 보인다. 즉 윗부분에 1줄로 8각의 띠를 두르고, 밑은 아래·위로 피어오르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그 사이에는 거북이가 몸을 앞으로 두고, 머리는 오른쪽을 향했으며 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4마리의 용이 구름 속에서 날고 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신은 4면에는 문(門)모양이,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이 새겨져 있다. 지붕은 처마가 수평이나 귀퉁이 부분에서 위로 향하였고 꽃장식이 달려 있다. 꼭대기에는 지붕돌을 축소해 놓은 듯 한 머리장식이 올려져 있다. 이 부도는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면서 아래받침돌을 네모반듯하게 짰음은 시대적인 특색이라 하겠다. 가운데받침돌의 조각은 가장 두드러지게 고려시대의 수법을 나타내었고, 각 부의 조화도 우아하고 화려하다. 기단부가 약간 비대한 듯 하지만 좋은 비례를 보여준다. 이 탑의 주인공인 원종대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9년(869)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958)에 입적한 고승이다. 건립연대는 원종대사혜진탑비의 비문에 의하여 고려 경종 2년(977)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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