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고려 조선 유적_왕릉

구한말 풍운아 김옥균 선생 유허

younghwan 2010. 9. 24. 09:28
반응형

 옛 아산현 소재지였던 영인면소재지에는 아산향교, 아산현 동헌 아문이었던 여민루가 옛 관가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 곳에는 특이하게도 구한말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풍운아였던 김옥균 선생의 묘소가 마을 뒷동산에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일본 동경의 청산외인무덤에 있었던 그의 무덤을 1914년 아산군수였던 그의 양자 김영진이 이곳으로 옮겨와 부인 유씨와 합장하였다 한다.

 김옥균 선생의 무덤은 아산만을 바라보고 있는 작은 동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본과 협력하여 개화운동을 했던 까닭에 일제강점기에 그의 양자가 이 곳 아산군수를 지낸 이 곳에 그의 묘소가 있을 수 던 같다. 김옥균 선생은 1894년에 천진에서 수구파 자객에게 암살당한 후 능지처참을 당했다가 갑오경장 이후에 복권되었다고 한다. 그의 사상과 실천방법이 반드시 옳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당시 사회 변화를 이끌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흥선대원국과 함께 구한말을 대표하는 풍운아라 할 수 있다.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옛 아산현 소재지 뒷동산에 위치한 김옥균 선생 묘소. 일제강점기에 이 곳으로 옮겨져서 그런지 제대로 묘소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김옥균 선생 묘소


묘소를 지키는 석물들


묘소 아래쪽에 있는 선생의 사당


선생의 묘소가 있는 작은 동산


선생의 묘소는 아산이라는 명칭의 유래가 되는 어금니바위가 있는 영인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묘소에서는 정면으로 옛 아산현 관아 건물들과 멀리 서해안 아산만이 보인다.


김옥균 선생 묘소


김옥균 선생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우정국 건물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의 묘이다. 김옥균의 호는 고균, 시호는 충달공으로 조선 조 철종 2년(1851) 1월 23일 충남 공주군 정안면 광정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종 9년(187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은 호조참판에 이르렀으며 1884년 조국 개화를 위해 갑신 개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894년 한. 청. 일 3국의 제휴 위한 삼화주의를 제창 동양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청국의 실력자 리홍장과 의논하고자 텐진을 방문하던중 동년 3월 28일 상해 여관에서 수구파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 당하였으며 시체는 본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갑오경장으로 개화당내각이 조직된 후 총리 김홍집등의 상소로 반역죄가 용서 되고, 1910년 규장각 대제학 추증(追贈), 익호(謚號)는 충달(忠達)이다. 묘는 일본 동경 청산외인 묘지(靑山外人 墓地)에서 1914년 9월 11일 의발(衣髮)을 이장, 정경부인 유씨와 합장한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