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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 (보물32호)와 석인상

younghwan 2010. 11. 2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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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만복사지 절터 입구에 있는 당간지주와 석인상이다. 사찰문화재 중 보물로 가장 많이 지정된 것이 아마도 당간지주이며, 대부분의 사찰에서 당간지주는 그 절의 역사와 같이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만복사지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체 높이가 5m 정도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조각수법에 세밀함이나 조형미 등은 통일신라시대나 삼국시대에 만들어 진 것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만복사지 입구에 있는 석인상은 높이 5.5m의 상당히 규모가 큰 석상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만복사지만의 특별한 내력이 있는 석상으로 보인다. 그 용도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이 되지 않고 있어 그냥 석인상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설명에 의하면 석굴암에 나타난 금강역사와 그 모습이 비슷하다는 견해도 있는 듯 하다.


만복사지 당간지주.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이전것에 비해서 세련되게 다듬지는 않고 자연석을 다듬어 거칠고, 소박하고, 웅장한 고려시대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만복사지 당간지주

당은 절에서 행사를 치를 때 문 앞에 내걸던 일종의 깃발로, 거기에는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그림을 그렸다. 당간지주는 이러한 깃발을 받치기 위해 세운 버팀기둥이다. 기둥에는 위.아래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받쳐주는 빗장을 끼웠다. 이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커다란 돌을 아무런 꾸밈없이 거칠게 다듬어 육중하면서도 소박한 멋을 풍긴다. 흙에 묻힌 받침부를 고려하면 전체 높이는 5m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큰 규모의 당간지주에서 그 옛날 웅장했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남원시청>


만복사지 석인상. 그 용도와 만든 목적을 알 수 없어 그냥 석인상이라 부르며, 투박하지만 세련된 멋을 보여준다.


단순하지만 돌출된 안구에서 석인상의 표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석인상은 원래의 위치에 한쌍이 도로변에 있었는데 이 곳으로 옮겨왔다. 현재의 위치는 만복사의 가람배치에 큰 의미는 없다.


뒷면에는 조각이 없고 구멍이 크게 두개 뚫려있다.


만복사지 석인상

만복사지 석인상은 본래 만복사지 당간지주에서 남쪽으로 400m 털어진 곳에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도로변에 노출되어 있어 사고 위험이 높은 1기의 석인상을 이곳에 옮겼다. 석인상의 형태는 사각형의 돌기둥에 3개의 면만을 사용하여 사람형상을 조각하고 나머지 한 면은 편평하게 다듬었다. 다듬은 면에는 두개의 구멍이 확인되었는데, 위쪽 구멍은 머리 정상부에서 아래쪽으로 122cm, 두번째 구멍은 318cm 내려온 곳에 있다. 석인상의 머리부는 정상부가 둥글고 볼록하게 솟아 있으며, 얼굴은 안구를 심하게 돌출시켜 분노의 모습을 띠고 있다. 몸통부는 상반신에 옷을 걸치지 반나체이며, 오른손은 완전히 구부려 주먹에는 그 성격이 불분명한 물건을 쥐고 있다. 군의는 허리부분에서 묶어 상단부 옷자락이 밖으로 뒤집혀 늘어졌으며, 옷주름은 굵은 물결무늬로 선명하게 돌출시켰다. 하반신은 수직으로 늘어뜨린 옷주름에 가려졌고 다리부분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다리의 아래쪽은 대좌를 사용하지 않고 사각형의 돌기둥을 뽀족하게 다듬었다. 석인상의 전체 높이는 5.5m 이며 머리위에서 다리끝까지의 길이는 3.7m 내외이다. <출처:남원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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