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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경

인천 소래포구, 김장철을 맞아 바빠진 새우젓 시장으로 유명한 서해안 포구

younghwan 2010. 11. 2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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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김장철을 맞이하여 젓갈을 준비하러 소래포구를 찾았다. 서해안 염전 입구의 작은 포구인 소래포구는 어느덧 서해안을 대표하는 포구와 어시장으로 변했다. 그래도 10여년전까지는 시골포구처럼 자동차로 찾아갈려면 좁은 시골길을 어느정도 거쳐야만 했는데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있는 시장처럼 변했다.

 그래도 검은빛의 갯벌과 작은 포구, 그 포구를 드나드는 작은 어선들, 북적이는 사람들과 어시장 상인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다. 얼마전까지 사람들이 걸어다니면 추억을 만들던 수인선 협궤열차 철교는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래포구는 일제강점기에 근처에 소래염전이 들어서면서 염전 입구에 작은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마을로 보인다. 그 이후에 소래포구에 수인선 협궤 열차가 지나가게 되면서 인천과 경기도 시흥, 안산 등 서해안 지역사람들이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어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소래포구는 새우젓으로 유명한데 이는 서해안에서 잡은 새우와 소래염전에서 나는 소금이 결합되어 주민들이 새우젓을 만들 수 있게 되고, 수인선 철도를 이용하여 이 곳의 새우젓을 들고 경기도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할 수 있었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면 소래포구가 크기 시작한 것은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실향민들이 이 곳에 모여들어서 작은 무동력배로 새우잡이에 나섰고, 그 새우와 염전의 소금으로 새우젓을 만들어 팔게 되면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무동력선 새우잡이 배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구에 정박한 작은 배를 찾아 볼 수 있다.


김장철이라 새우를 잡은 배들이 열심히 포구로 들어오고 있다. 아마도 이 배들은 잡은 새우를 운반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선들이 정박하는 선착장.


방금 도착한 배들에 포구에 정박한 후 잡은 새우들을 내리고 있다.


방금 잡은 김장용 새우를 내리고 있는 어부.


여느 포구나 마찬가지로 고깃배가 들어오면 즉석에서 시장히 형성되는데 이 곳 소래포구 역시 방금 잡아온 새우를 받아서 파는 상인들이 생새우를 난전에서 일반인들에게 팔고 있다.


이 곳의 생새우는 방금 잡아온 것이라 멸치나 다른 종류의 갑각류들이 섞여 있는데, 새우들이 팔딱팔딸 뛰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다시 새우잡이를 하러 바다로 나가는 어선들


소래포구에 정박한 어선들. 소래포구는 70년대까지는 아주 작은 포구였지만, 인천항이 정비되면서 인천연안부두에 무동력 새우잡이 배들이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이 곳 소래포구로 몰려들면서 큰 새우 파시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수인선 협궤열차와 더불어 서해안을 대표하는 포구이자 관광지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래포구는 항구 자체가 넓지는 않고 밀물 때에만 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아 보인다. 소래포구 옆으로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소래철교 아래의 선착장.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곳으로 보인다.


선착장을 이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곳에서 생선들을 말리고 있다. 생선말리는 모습과 비릿한 냄새에서 이 곳이 포구임을 실감나게 해 주고 있다.


포구에서는 빈터만 있으면 어디든지 생선을 말리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생선을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소래포구를 있게 해준 수인서 철도. 이 철도는 일제강점기에 인천과 수원을 거쳐서 여주로 연결된 협궤철도로 경기도 내부에 물자를 운송해 주던 역할을 했던 열차로 1995년에 그 소임을 다하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수인선 협궤철도를 다니던 협궤용 증기차.

이 기관차는 1927년 6월14일 수원기관차 사무소에서 조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협궤용 증기기관차이다. 1937년 8월6일 수원역 - 남인천역에 이르는 52km의 수인선이 개통되어 소금 및 미곡 수송과 더불어 인천시민의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1978년 여름까지 운행되었다. 그 후 수인선은 디젤동차로 바뀌었으며 1995년 12월 31일 우리 서민들의 삶고 애환을 뒤로한 채 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 이 증기기관차는 1983년 쌍용그룹이 철도청으로부터 구입하여 한국도로공사에 기증하고 대관령 휴게소에 전시하여 왔으나, 시민들의 염원속에 인천귀향을 추진하게 되었고, 2001년 10월 29일부로 인천광역시에 기증되어 2001년 11월 15일 남동구청 앞 담당문화 근린공원에 이전 설치되었다가 2008년 7월 6일 현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 협궤용 증기기관차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희소성과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할 것이다. <출처:인천시청>


선착장를 제외하고는 아주 큰 규모의 어시장을 볼 수 있다. 서해안에서 잡히는 대부분의 생선을 팔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새우와 꽃게, 그리고 조개류들이 싱싱해 보인다.


소래포구 어시장


소래포구 뒷편으로는 갯벌을 메꾸어서 만든 아파트촌을 볼 수 있다. 근래에 볼 수 있는 소래포구의 모습이다.

소래의 역사
소래포구는 1933년 소래염전이 들어서고, 1937년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가 다니는 수인선이 개통됨에 따라 발전된 마을입니다.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축정 1:50,000 지형도에 보면 소래포구는 바다 한가운데 비쭉 나와 있는 곳으로 시흥시 월곶동으로 건너다니던 도선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시흥시 포동 새우개까지 바다였습니다. 그 후 1974년 인천내항이 준공된 후 새우잡이를 하던 소형어선의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한산했던 소래포구가 일약 새우파시로 부상하였으며, 지금은 새우, 꽃게, 젓갈 등으로 널리 알려져 평균 300만명의 인파가 몰리는 관광명소로 발돋음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인선 협궤열차는 썩은 침곳 위에 흔들리는 레일만이 그때의 모습을 회상하게 해 줍니다. <출처:인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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