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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공주목 동헌, 공주목사가 근무하던 건물

younghwan 2011. 4. 1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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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웅진동 공주박물관 입구로 옮겨진 옛 조선시대 공주감영 건물 중 공주목사가 근무하던 동헌 건물이다. 조선시대 공주는 충청관찰사가 근무하던 감영이 있던 고을이며, 보통은 충청감사가 공주목사를 겸임했다고 한다. 공주목은 금강 중하류지역인 공주, 부여, 서천 등의 지역을 관장하고던 고을로 현재의 대전광역시 또한 공주목에 속해있었다고 한다. 공주는 금강수운, 한양과 호남지역 간 내륙 교통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교통의 요지로 일제강점기에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교통의 중심지가 대전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충남도청 소재기이기도 하였다.

 공주목사가 근무하던 건물인 동헌은 동학농민전쟁 이후 일어난 갑오개혁 이후에 세워진 건물로 건물규모로 볼 때는 목사가 근무하던 동헌건물 중에는 작게 지은 건물이다. 아마도 구한말 조선정부의 재정능력이 상당히 취약해서 제대로 된 관아건물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주목 동헌은 공주감영에서 약간 떨어진 현재의 공주의료원 자리에 있었다고 하는데, 충청감사가 겸직하던 공주목사를 이때 별도로 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주감영 관아 건물들이 복원되어 있는 공주박물관 입구에는 선화당과 동헌이 복원되어 있다. 그중 19세기말에 지어진 공주목 동헌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한옥건물로 평범해 보이는 외관을 하고 있다.


공주목 동헌 건물은 앞면 8칸, 옆면 3칸반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2칸, 3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보통 동헌 건물 왼편에는 보통 수령이 쉬거나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온돌방이 있다.


대청마루로 이루어진 동헌 가운데 3칸은 고을 수령이 재판을 진행하거나 민원인을 공식적으로 접견하는 공간이다.


건물 가운데에 걸린 '동헌' 현판


동헌 건물 오른편 3칸은 고을 수령이 외부 손님을 접견하는 접견실 역할을 하는 방이다.


통로로 사용되는 건물 앞 툇마루


동헌 건물 옆면은 3칸으로 되어 있으며, 가운데 온돌방을 위한 아궁이가 보인다.


공주목 동헌 전경



공주목 동헌
조선시대 공주목사가 업무를 보던 곳이다. 이 건물은 고종 33년(1894)에 세워져 1911년까지 지방의 일반 행정 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졌다. 충청감영 소재지인 공주는 관찰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서현' 또는 '내아'라고 하는 목사의 생활공간과 구분하여 그 동편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헌이라고 불렀다. 원래는 공주위료원에 있던 것을 1994년 이곳으로 옮겨 원래의 모습돼로 복원하였다. <출처:공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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