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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원주 감영감영 내야, 강원관찰사가 머물던 생활공간

younghwan 2011. 5. 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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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관찰사가 근무하던 원주시 도심에 소재한 강원감영 관아건물 중 남아 있는 내아 건물이다. 내아는 관찰사의 살림집에 해당하는 건물로 일반적인 지방관청의 내아와는 달리 건물규모도 상당히 작고, 단촐해 보인다. 내아가 위치한 곳도 관찰사 집무공간인 선화당과 바로 붙어 있다. 이는 일반적인 지방관아의 내아가 가족들이 거처하는 살림집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감영 내아는 관찰사가 머무는 숙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관찰사는 지금의 도지사와 마찬가지로 직위도 높고, 나이도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부임지에는 단신으로 부임하고, 근무기간 동안 감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라 관할 구역에 있는 고을들을 돌아다니면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사 실제로 살림집의 필요성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원감영 내아는 앞면 6칸의 몸체에 3칸짜리 건물이 붙어 있는 'ㄱ'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살림집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은 내아 건물에 부엌이 없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사랑채도 없다는 점이다. 내아 건물 대부분은 중요 물품이라 서류 등을 보관하던 창고 건물이며, 관찰사가 머무는 공간은 작은 툇마루를 두고 있는 방이 2개뿐인 3칸짜리 건물이다. 아마도 손님을 맞는 사랑채의 기능은 업무공간인 선화당을 이용하고, 식사준비 등은 감영내 다른 건물에서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감영 내아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조선시대 관찰사가 머물던 감영 내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강원감영 내아. 앞면 6칸짜리 몸채에 3칸짜리 날개채가 붙은 'ㄱ'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일반적인 살림집은 'ㄱ'형 안쪽으로 쪽마루나 대청마루가 있어서 사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건물에서는 뒷마당 역할을 하고 있다.


내아 건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앞면 6칸 규모의 몸채는 건물 구조상 중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의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출입문이 살림집 출입문과 다른 모양이고 온돌이나 대청마루가 없다.


관청에서 중요한 물품이나 서류 등을 보관하던 큰 창고의 출입문으로 보인다.


창문을 두고 있는 뒷쪽편 모습


관찰사의 집무공간인 선화당 방향으로 툇마루가 있는 3칸짜리 날개채가 실제로 관찰사가 머물던 숙소로 보인다.


선화당 방향으로 툇마루가 있고, 2칸짜리 방 1개와 1칸짜리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관찰사가 주로 머물던 숙소로 관찰사 가족이 방문했을 때 머물수 있도록 방이 2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찰사라는 높은 직위의 인물이 머물던 살림집이지만 상당히 단촐한 규모를 하고 있다. 이 건물에서 부엌은 찾아볼 수 없다.


대청마루와 방문


'ㄱ'자형 건물 안쪽 방향으로 뒷물을 두고 있다.


원주감영 내아


관찰사가 근무하던 영역에는 선화당과 내아만 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뒷편에는 연못과 누각이 있었다고 한다.



강원감영 내아
내아는 안쪽에 자리한 동헌으로 내동헌이라고도 불린다. 관찰사의 집무공간인 선화당과 함께 내아는 안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여지도서,1750년>의 기록에는 '대은당'으로, <관동지, 1870년>의 기록에는 '내아'의 명칭으로 불렸다. 2000년 발굴조사 당시 내아터에서 '숭정삼경진사월초칠일유시상량기'라는 명문과 묵서된 상량문이 발견되었고, 이에 따라 현재 복원된 건물의 축조시기가 1760년(영조36)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아는 온돌방과 창고가 함께 있는 민도리집 계통의 건물로 발굴조사 과정에서 조선시대 도자기 유물이 다량 나온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오랜 기간 동안 생활공간으로 활용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내아는 수세기 동안 점면적인 중수.보수가 이루어진 건물로 각 시기별 건축구조와 양식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대체로 17세기 후반 관찰사가 강원도 지방을 돌아다니던 순력체제가 감영에 머물면서 강원도를 다스리던 유영 체제로 전환되면서 내아는 관찰사 가족들이 머물던 생활공간으로 추정된다. 강원 감영복원사업 추진에 따라 2005년 6월 17일 전면 해체 보수하였다. <출처:원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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