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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강 충주호에 수몰된 옛 청풍도호부 읍성 성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청풍 팔영루이다. 청풍도호부는 부사가 고을 수령인 조선시대에는 상당히 규모가 컸던 고을이다. 청풍도호부는 충주, 단양과 함께 남한강 내륙수운의 중심지이자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주요 교통로인 죽령고갯길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 삼국시대 이래로 크게 번성하였던 고장으로 여겨진다. 충주와 함께 경부선 철도의 교통으로 크게 쇠락했다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비운의 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풍 팔영루는 옛 청풍도호부 읍성 성문으로 보이는 문루이다. 팔영루를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초기 전국적으로 읍성을 구축할 때 처음 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팔영루는 2.2m 기단에 크지 않은 4각형의 출입문을 만들고 그 위에 문루를 올려놓고 있다. 성문 문루로서는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 이는 팔영루와 읍성의 성격이 전쟁을 대비한 성곽이라기보다는 형식적으로 쌓은 것이라고 보여진다. 문루 바깥쪽에는 '팔영루'라는 현판이, 안쪽에는 '현덕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팔영루'라는 이름은 청풍팔경을 시제로 한 팔영시가 있어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청풍이 조선후기에 양반사회에서 크게 유행한 관동팔경 유람길을 마치고 죽령을 넘어서 서울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이 있는 고을이라서 유명 인사들이 많이 다녀갔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옛 청풍도호부 지역의 고택들을 옮겨놓은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소재한 청풍문화재 단지로 들어가는 입구. 읍성 문루로 보이는 팔영루를 볼 수 있다.


청풍 팔영루는 읍성 성문으로는 견고하게 만들어진 성문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팔영루 성문 출입문은 사람키 정도로 아주 낮게 만들어졌으며, 수레 한대 정도가 지나갈 수 있다.


문루 바깥쪽에 '팔영루'라 적힌 현판.


원래 청풍도호부가 있던 지역시 수몰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하며, 지금이 모습이 옛 읍성의 모습인지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은 문루만 남아 있다.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이층문루.


팔영루 안쪽 출입문. 4각형의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석축은 남한강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해서 쌓고 있다.


문루를 오르는 계단


문루 안쪽에는 '현덕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팔영루를 지나서 옛 청풍헌 관아 건물을 비롯하여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고가들을 옮겨 놓은 청평문화재단지로 들어오는 길.


언덕 위에서 본 팔영루



청풍 팔영루,
이 곳은 청풍부를 출입하는 관문이다. '현덕문'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종 7년(1870)에 세운 '팔영루 사적비'에 의하면 숙종 28년(1702)에 부사 이기홍이 중건하고 현덕문이라 한 것을, 고종 7년에 부사 이직현이 중수하고 사적비를 세웠다. 그 후 부사 민치상이 청풍팔경을 시제로 한 팔영시가 있어 팔영루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는 읍리 286번지의 청풍 북쪽에 있었으나, 1983년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2m의 석축 기단을 쌓고 그  중앙에 4각의 문을 내고, 문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기단 위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의 다락집을 세웠다. <출처:제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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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 청풍팔영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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