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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특별전시] 대동여지도, 지도에 담은 동방의 큰 나라

younghwan 2011. 6. 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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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1년 봄에 <대동여지도> 간행 150년을 기념하여 '대동여지도, 지도에 담은 동방의 큰 나라'라는 주제로 테마전시를 하고 있다. 고산자 김정호는 구한말 조선의 지리학과 지도제작 성과를 집대성한 <대동여지도>를 철종 12년인 1861년에 간행하였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17세기 이래로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른 군사적인 목적과 지방통치를 위한 행적적인 요구로 다양한 형태의 지도들이 제작되었고, 지도제작 기술 또한 크게 발전하였다. 대항해시대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지도제작 붐이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제작기술 또한 많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시기에 1리, 10리, 20리, 100리 방안을 이용한 다양하 지도들이 제작되었고, 이를 고산자 김정호가 정밀한 검증을 거쳐서 집대성한 것이 철종때인 1861년 만들어진 대동여지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를 남북 120리씩 22층으로 나누고, 각층별로 동서방향의 지도를 수록한 지로도 22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펼치치면 하나의 대형 전국지도가 된다. 김정호는 지도제작에 필요한 다양한 기로를 사용하고, 산줄기와 물줄기를 크기에 따라 달리 표현하여 지도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목판본으로 만들어진 지도는 고산자가 김정호가 철저한 실사와 검증을 통해서 제작한 것으로 상당히 정밀하고 수준높은 지도이다.

 국립중앙박물에서 개최한 특별전시인 '대동여지도, 지도에 담은 동방의 큰 나라'는 고산자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중심으로 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기 위해서 시도한 각종 지리서 및 지도들, 그 이전의 지도를 함께 전시하여, 17세기 이래로 조선의 지도제작에 대한 경향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대동여지도의 성과 및 의의를 이해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상세한 지리정보를 담은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전체를 남북 120리씩 22층으로 나누고, 각층별로 동서방향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이다. 각층의 지도를 담은 22권의 책을 모두 펼쳐 연결하면, 세로 6.7m, 가로 약 3.8m 크기의 대형 전국지도가 된다. 또한 김정호는 산줄기와 물줄기를 중요성과 크기에 따라 달리 표현하여 실제 모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위에 다양한 인문지리 정보를 상세하고 정확하게 수록하였다. 11,500개에 달하는 수많은 지명을 기호를 통해 쉽게 인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 중 남해안의 사천에서 김해까지의 지도이다. 웅천, 진해(현 진동), 고성 읍겅고, 통영(통제영)의 고을, 산줄기, 도로 등이 아주 세밀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표현되어 있다.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


오늘날 지도의 범례에 해당하는 각종 기호들과 인문적인 정보 등이 같이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를 보는 방법

김정호 이전의 지도제작
17세기 이래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른 군사적인 관심과 지방사회의 발전에 따른 행정적인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지도들이 제작되었고, 지도제작 기술도 발전하였다. 즉, 정상기(1678~1752)가 백리척을 사용하여 제작한 <동국지도>계통의 지도를 비롯하여 방안식 고을 지도, 회화식 고을 지도 같은 다양한 제작 기법의 지도들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지도들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각종 지도 제작에 밑거름이 되었다.


1리방안으로 그린 충청도 고을 지도, 18세기에 그려진 지도로 동일한 축척에 따라 충청도의 고을을 그린 지도이다. 이 지도에는 읍치공간을 따로 강조하지 않았으며, 성읍.각면.산과 하천.사찰.창고.봉수.저수지 등의 지리정보가 담겨져 있다. 지도의 뒷면에는 호수.군병.창고.전선.봉수.역참 등 지방행정에 필요한 내용이 적혀 있다.


10리 방안으로 그린 경상도지도.18세기에 10리 방안으로 경상도를 그린 방안식 지도인 영남도지도이다. 이 지도는 가로 70칸, 세로 100칸의 방안 위에 대구 감영을 중심으로 경상도 전역을 그렸다. 도로는 직선에 가까운 실선으로 묘사했으며, 지도의 뒷부분에 대구를 중심으로 고을간의 거리를 기록하였다.


20리 방안으로 그리 우리나라 고을지도. 18세기에 20리 방안으로 그린 고을 지도인 해동여도이다. 이 지도는 수록된 군현의 크기에 따라 방의 크기가 조정되어 도면마다 축적이 다르다. 호수.하천.바다는 청색, 산맥은 연녹색, 봉수는 붉은색 기둥으로 하고, 창고 등 건물은 청색 지붕을 가진 건물로 그렸다.


백리척을 사용한 우리나라 전국지도, 동국지도, 19세기. 정상기의 동국지도 계통의 지도이다. 이 지도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담은 도별도로서 0.3cm가량의 백리척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지도의 여백에는 8대로가 수록되어 있고, 경계가 되는 지역도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회화식 전국 고을 지도, 여도, 18세기. 회화식으로 그려진 우리나라 고을지도를 모은 책이다. 이 지도는 읍치 공간을 중심으로 중요한 시설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지도의 뒷면에는 해당 고을의 인구수, 호구수 등 지방행정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다.

김정호의 청구도 제작 및 지리지 연구
순조 34년(1834)에 김정호는 기존 지도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청구도>를 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도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는 보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 지리정보를 상세하게 담기 위해 지리지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김정호는 <동여지도>, <여도비지>, <대동지지> 같은 지리지를 편찬하였다. 이러한 지리지 연구는 지도제작과 함께 지리학자로서의 김종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필사본으로 만든 우리나라지도, 19세기 후반에 그려진 동여도로 김정호가 대동여지도 제작 이전에 만들었던 대축척 필사본 지도이다. 이 지도는 대동여지도처럼 22층의 접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판본인 대동여지도에 비해 약 7천여 개의 지명이 더 수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한반도의 윤곽, 산계와 수계, 도로망을 비롯한 대부분의 내용이 대동여지도와 일치하고 있다.


목판본인 대동여지도와는 달리 필사본을 그린 지도이다. 대동여지도 제작의 기본자료가 되었던 지도이다.


순조 34년(1834), 영남대학교 소장 보물 제 1594-2호로 지정된 순조 34년(1834)에 김정호가 처음 제작한 전국지도인 청구도이다. 이 지도는 지리지에만 수록되던 정보를 지도에 수록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즉, 모든 고을마다 호구수, 토지면적, 군사의 총수,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곡물의 총량, 한성까지의 거리 등을 기록하였다.


경조오부도. 수도권 지도라고 할 수 있다.


도성도.


오늘날 범례라고 할 수 있는 지도표이다.


한반도 제일 북쪽에 해당하는 두만강 주변 중성.온성.경원의 지도이다.


방안표


김정호 친필본 지리지, 동여도지


동여도지 서문.

우리나라 팔도에 있는 고을이 모두 334개이다. 지도와 지리지는 서로 본체와 쓰임의 관계이다. 지리 형세의 제작은 지도와 지리지의 관계속에 있다. 그러면 거의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운운 철종 12년(1861) 8월 고산자 김정호가 쓰다. <출처:중앙박물관>

김정호의 다양한 지도 제작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와 같은 대축척 전국지도 뿐만 아니라 한장짜리 소축척 전국지도인 <대동여지전도>, 서울지도인 <수선전도>, 일종의 세계지도인 <지구전후도> 등 다양한 지도를 제작하였다. 목판 인쇄 방식으로 제작된 이 지도들은 필사 과정에서 생길수 있는 잘못된 지리정보의 유통을 막을 뿐 아니라 지도의 보금에 기여하였다. 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제작에 앞서 채색 필사본 전국지도인 <동여도>를 만들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목판본 서울지도인 수선전도. 목판본으로 만들어진 이 지도는 20세기 초까지 많은 사람들이 활용했던 지도로 목판은 고려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김정호가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 서울 지도이다. 수선이란 서울을 뜻하는 것으로 수선전도는 서울 전체의 지도라는 뜻이다. 남쪽으로 한강을 한계로 하여 북쪽으로 도봉산, 서쪽으로 마포, 동쪽으로 답십리까지 포함하고 있다. 도봉산.북한산에서 뻗어내린 산세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고, 도성의 중앙에 흐르는 청계천의 모습도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도성 내부에 궁궐.관청 등의 이름과 성곽 주위의 동네 이름과 산까지 기록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소축척으로 제작한 대동여지전도, 19세기

대동여지도를 소축척으로줄여서 만든 우리나라 지도이다. 이 지도는 대동여지도와 같이 독특하게 산줄기를 표현하였는데, 연이은 톱니 모양으로 산줄기를 그렸고 굵기로 산줄기의 크고 작음을 구분하였다. 각 군현의 정확한 위치와 더불어 도로망도 자세하게 표시하고 있는데, 서울로부터의 거리도 옆에 적어 넣었다. 팔도의 경계를 점선으로 표시하였고, 지도의 여백에는 국토의 형세를 묘사한 글이 쓰여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목판으로 인쇄한 대동여지도
철종 12년(1861)에 김정호는 우리나라 지도 제작의 전통을 집대성하여 <대동여지도>를 간행하였다. 이 지도는 오늘날의 지도와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상세할 뿐만 아니라 목판 인쇄본으로 제작하여 지도의 보급에 기여하였다. 이후 김정호는 초간본(1861)의 일부 오류를 수정하여 재간본(1864)을 발간하기 위한 수정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수정노력은 조금이라도 더나은 지도를 제작하고 했던 김정호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를 찍은 목판(표제부분), 1861년. 대동여지도를 인쇄했던 목판 중 표제부분이다. 표제부분은 원래 '당저십이년 신유'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뒤 재간본을 만들면서 '십이년 신'를 파내고 '원년 갑자'로 붙여 넣었다. 현재에는 '당저'만 남아 있다.


대동여지도초간본, 1861년, 영남대학교 소장. 철종 12년(1861)에 간행된 대동여지도이다. 이 목판본에는 '당저 십이년 신유'라고 찍혀 있는데, 이는 철종 12년(1861)에 해당된다.


대동여지도를 찍어낸 목판으로 보물 제 1581호이다. 철종 12년(1861) 대동여지도 간행 당시에 사용됐던 목판이다. 이 목판은 가로 43cm, 세로 32cm 정도의 크기이고, 표제 부분을 제외한 목판에는 앞뒤 양면에 모두 판각이 되어 있다. 이후 대동여지도의 재간본(1864)의 간행을 위해 목판을 수정하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 함경도 함흥지역 목판이다.


평안도 안주지역


경상도 대구지역


전라도 무안지역


함경도 장백산 지역


함경도 갑산지역


지도표, 종성.온성.경원


두번째로 찍은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 재간본. 고종 1년(1864)에 간행된 대동여지도이다. 이 판본에는 '당저 원년 갑자'라고 찍혀 있는데, 이는 고종 1년(1864)에 해당된다. 김정호는 초간본의 간행 이후 드러난 오류를 확인하는 대로 수정작업을 진행하여 재간본을 간행했다.



전체를 펼쳐놓은 대동여지도


우리나라 지도인 동여도


우리나라 전체를 남북14층으로 나누고 각 층별로 동서 방향의 지도를 수록한 전국지도이다. 각 층의 지도는 1권의 책으로 묶어 동서 약 140리를 기준으로 접고 펼 수 있도록 해서 간편하게 만들었다. 각 도면에는 세로 10개, 가로 7개의 모눈이 그려져 있는데 모눈 한 개는 20리에 해당한다. 전체 윤곽은 김정호의 <청구도>와 비슷하다. <출처:중앙박물관>

*자료참조: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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